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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벤처기업가가 교육자로 변신한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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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로 대변신한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지난달 27일 오후 7시 교원대학교 대강당이 800여명의 학생들로 꽉 들어찼다.

그곳에서 만난 이용태(77) 전 삼보컴퓨터 회장은 강단에서 생의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고 있었다. 국내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생산해 내면서 최초의 벤처사업가로 꼽히던 그다.
하지만 지금 그는, 생의 가치를 찾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노학자 파우스트처럼 예비 교사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고 있었다.

"여러분들이 교단에 나가 40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가정하면 저는 지금 얼추 24만 명 가량의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는 셈이군요." 800명의 예비 교사가 앞으로 맡게 될 학생 수를 감안한 발언이었다. 아이들에게 영혼을 팔아야 하는 교사들부터 찾아왔다는 얘기였다.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회장이 지난달 27일 교원대학교 대강당에서 '인성교육, 성적보다 먼저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회장이 지난달 27일 교원대학교 대강당에서 '인성교육, 성적보다 먼저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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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하는 동안 그는 어느새 20대 젊은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감격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고 '인성교육, 성적보다 먼저다'란 자신이 직접 집필한 교재를 예비교사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1시간 30분 동안 열정적으로 이어진 강의에서 여든 살 할아버지를 20대 청년으로 만들어 준 묘약이 '인성교육'임을 알게 됐다.
"아이들이 불을 질러 온가족이 몰살당하고 시험 성적이 뚝 떨어지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 내리는 게 요즘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이 심각한 상황조차도 우리 사회는 너무 무덤덤해요."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강연을 이어갔다.

"이 상태로 아이들을 내버려두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꼭 30년 전 이 땅에 처음 컴퓨터를 들여오면서 정보화 사회를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하던 열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인성교육 전도사가 된 이유를 요즘 아이들의 행태에서 찾아낸 할아버지 선생님은 "우리나라가 진짜 선진국이 되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친절하고 반듯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성교육의 현실'은 암담했다. 아이들에게 '1등해라, 출세해라'는 얘기만 할 뿐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제대로 인성교육을 하는 이는 없었다.

누군가 나서야 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인성교육을 할 것인가'에 관한 매뉴얼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용태 전 회장은 직접 손자와 대화하면서 자신만의 교육법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연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책이 '인성교육, 성적보다 먼저다'였다.

'인성교육, 성적보다 먼저다'

'인성교육, 성적보다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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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스스로 '감화'할 수 있도록 만든 실천 방법은 바로 '1-1-6모델'이다.

가족끼리 혹은 교실에서 한 달에 한 번, 한 시간씩 이야기 한 편을 정해서 읽는다. 그리고 이야기를 외운다. 그 다음 그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교훈을 찾아본다. 가족이나 선생님과 함께 이 이야기와 관련된 경험을 나눈다. 그리고 각자 실천할 일을 정한다. 마지막으로 다음 달 모임에서 이를 실천했는지 점검한다.

이용태 전 회장은 이런 방법으로 1년 동안 꾸준히 하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지금도 매일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2005년 정든 비즈니스 세계를 떠날 때 IT업계의 많은 후배들은 쓸쓸한 그의 뒤안길을 안타까워했다.

그가 이끌던 삼보컴퓨터는 한 때 업계 최정상이었다. 한국 최초로 두루넷 나스닥 상장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사원들에게 나눠준 스톡옵션이 아파트 한 채 값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성공하기까지 그 역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의 순간을 겪었다.

그가 세운 한국 최초의 컴퓨터 회사인 삼보컴퓨터는 2005년 결국 법정관리까지 갔다.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는 건 비즈니스가 끝장났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 난관에 부딪히게 되면 보통 사람들은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숨어버린다. 하지만 그는 어려움에 처해도 좌절하지 않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만 옷을 갈아입을 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그는 은퇴 후 정보산업보다 더 중요한 인성교육을 발견하게 되었고, 현재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 그의 인생 목표는 "우리나라 모든 어머니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아이들을 위한 인성교육을 하는 것"이다. 오늘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서 강연을 한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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