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7월, 에드워드 윔퍼 일행이 알프스의 마터호른(4478m)을 처음으로 올랐다. 윔퍼 일행의 마터호른 초등(初登)으로 알프스의 눈에 띄는 봉우리란 봉우리에는 모두 인간의 발자국이 남겨지게 됐다. 다들 알프스에는 더 이상 오를 고봉이 없다고 했다. 앞으로 누구도 초등의 기쁨을 누릴 수 없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반역아' 알버트 머메리는 달랐다. 머메리는 '보다 어렵고 다양한 루트(more difficult variation route)'를 개척하는 모험적인 등반에 나선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등산은 시작된다'며. 머메리는 말에 그치지 않았다. 1879년 마터호른의 츠무트 능을, 다음해에는 푸르겐 능을 '처음으로' 올랐다.
산악인들은 머메리의 등반정신을 '머메리즘(mummerism)'이라고 했다. 정상에 올랐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달리 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등로주의(登路主義)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머메리 이후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목적이 아닌 고난과 싸우고 그것을 극복하는 등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머메리즘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 가장 어려운 길을 개척하고 도전하는 정신이다. 가이드 없이 산행하는 것도 머메리즘의 핵심 개념이다. 그가 1895년 6월, 나이 마흔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히말라야의 낭가파르바트(8126m)에 도전했다가 등반 중 사라진 것은 그 다운 선택이었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도전정신과 굴하지 않는 의지'의 상징인 기업가정신(起業家精神ㆍentrepreneurship)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다. 전후의 폐허 위에서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기업가정신이 2000년대 초 벤처기업의 몰락을 기점으로 점차 위축돼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뱁슨대와 영국 런던비즈니스 스쿨이 해마다 발표하는 글로벌기업가정신연구(GEM)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은 자발적으로 자기 사업을 시작하는 '기회형 창업 활동'이 2002년에는 조사 대상 37개국 중 5위였다. 그러나 2009년에는 조사 대상(혁신주도형 국가) 20개 국가 중 꼴찌였다. 2000년 53.2였던 중소기업청의 기업가정신지수도 2007년 18로 떨어진 후 좀체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창업 열기도 전 같지 않다. 전체 벤처기업가 중 1999년 58%에 달했던 20~30대 비중이 지난해에는 11.9%로 격감했다.
기업가정신이 이처럼 쇠퇴한 까닭은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정부의 각종 규제, 노사 갈등, 반기업 정서, 벤처캐피털 등 지원 하부구조의 미흡 등이 꼽힌다. 따라서 기업가정신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창업 여건과 인프라 구축, 규제 완화, 재도전 기회 제공 등의 환경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월 150만원 견디느니, 美 가서 5억 벌죠" 서울대...
그러나 기술과 환경이 기업가정신을 북돋는 전부는 아니다. 무엇보다 위험을 피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기업가정신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기업들은 안정지향으로 바뀌었다. 청년들도 취업난 속에 공무원, 의사, 변호사, 교사 같은 안정적인 일자리에 몰리면서 스펙 쌓기에만 골몰할 뿐 창업에는 눈 돌리지 않는다. 모험과 도전 의식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게 더 큰 문제다.
지난주는 '기업가정신' 주간이었다. 내일은 '벤처코리아 2010'이 시작된다. 기업가정신과 벤처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들이다. 제2의 이병철, 제2의 정주영이 나타나 "기업가정신의 최고 실천 국가는 한국"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찬사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보여주는 모멘텀이 되기를.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