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정부가 의약품 가격을 강제 인하하는 새 제도를 도입한다. 병원과 제약사 간 힘겨루기를 시켜 약값이 떨어지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상거래상 불리한 위치에 있는 쪽의 굴복이 뻔하니, 제약사 수익을 빼앗아 건강보험 재정을 보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보건복지부는 내달 1일부터 '의약품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를 본격 시행한다고 30일 밝혔다.

이 제도는 병원이 제약사로부터 약을 구입할 때 실제 거래되는 가격을 파악해, 그에 따라 보험약값을 재조정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예를 들어 보험약값이 1000원인 약이 있는데, 병원이 제약사 간 입찰경쟁을 붙여 최종 900원으로 납품을 받는다면, 정부는 절감액 100원 중 70원(70%)을 병원에 인센티브로 지급하고 30원(30%)은 환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이 후 정부는 이듬해 이 약의 공식 가격을 1000원에서 최대 10% 정도 깎아 고시한다. 이 기전은 해마다 반복돼, 약값이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때까지 지속된다.


즉 병원과 제약사 간 줄다리기를 시켜놓고, 여기서 발생하는 제약사의 출혈을 병원과 환자에게 나눠 주겠다는 셈법이다. 이는 보험약값에 거품이 끼어 있어 이것이 리베이트로 연결되며, 건강보험 재정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했다.


이 제도 시행 전에도 제약사들은 경쟁을 통해 저가 납품을 해왔으나, 병원이 이를 그대로 신고하지 않고 차액을 '리베이트' 개념으로 챙겨왔다. 이렇듯 기존 '실거래가 상환제'가 약가인하 효과가 없이 리베이트만 양성하고 있다고 판단, 제도를 보완, 수정한 것이 이번에 마련된 새 제도다.


복지부 관계자는 "제도가 정착되면 의료기관은 불법 리베이트가 아닌 공식적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고, 제약사도 불법 리베이트에 들어가는 비용을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고 의미를 뒀다.


실제 제도 시행을 앞두고 인센티브를 노린 대형병원들의 '가격 후려치기'가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은 제약사에게 예상 견적서를 받으며 저가 납품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 외 병원들도 정상가보다 25∼30% 정도 인하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사들은 사면초가 상태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상거래 위치상 병원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으니, 손해를 보더라도 저가납품에 응할 수밖에 없다"며 "제약회사의 수익성 악화가 불 보듯 뻔하다"고 덧붙였다.


업계는 정부가 원하는 '리베이트 비용의 연구개발비 전환' 효과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고 바라본다. 오히려 수익성 악화를 통한 중소형 제약사의 몰락이 우려된다.


제약사 관계자는 "약 종류에 따라 손해가 많이 날 것같은 제품은 생산을 포기하는 업체들도 있을 것"이라며 "진료차질과 업체 도산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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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역시 이 제도의 실제 목적이 약값인하를 통한 건강보험 재정절감, 제약회사 구조조정에 있다는 점을 직간접적으로 밝힌 바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새 제도는 의약품 유통 투명화를 통해 국민 부담을 경감시키고, 제약산업의 구조를 불법 리베이트 중심에서 R&D 중심으로 재편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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