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1. 1889년 화투제조기업으로 출발한 닌텐도는 2000년대 초 위기를 겪는다. 8비트, 16비트 게임기 시장에서만 해도 절대적인 위상을 뽐냈지만, 게임기콘솔의 사양이 올라갈수록 경쟁력을 잃어갔다. 결국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등과의 고사양 경쟁에서 밀리며 재기가 힘들 것이란 평도 나왔다.


그러나 2004년 내놓은 닌텐도DS가 전환점이 됐다. '얼마나 사양이 높은지'가 아닌 '얼마나 다양한 가치들을 한곳에 녹일 수 있는지'에 방점을 둔 이 게임기는 단박에 시장에서 큰 히트를 쳤다. 정확히 2년 후 같은 날에 출시한 후속작 닌텐도 위(Wii) 역시 이 회사 부활의 선봉장에 선 사례.

그 결과 2005년 5090억엔에 달하던 매출액은 2008년에 이르러서는 1조8200억엔까지 상승했다. 영업이익률 역시 같은 기간 18% 수준에서 29%로 수직상승했다.


#2. 정부는 지난 7월 IT융합 확산전략을 발표했다. IT를 비롯해 자동차, 조선 등 타 산업간 융합을 촉진해 오는 2015년까지 5대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게 주 내용이다.

이에 앞서 1년 전, 국가 융합기술 발전 기본계획이 수립되기도 했으며,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역시 비슷한 내용을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역시 지난해 7월 IT융합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시스템반도체 육성을 위해 차량용 반도체를 공동개발하기로 했다.



산업계와 학계·연구기관들간의 협력을 넘어 각 산업이나 기술간 교류까지, 연구개발(R&D)분야에서 '융합(convergence)'이 중요하다는 논의는 사실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최근 들어 정부와 학계, 산업계에서 융합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건 그만큼 시급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난 3일 코엑스에서 열린 '융합기술혁신과 산학연포럼'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여럿 제시됐다.


◆"융합, 어렵지만 피할 수 없다" = 실제 산업연구원이 지난 4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문가들 가운데 산업간 융합이 시급하다고 답변한 비율은 90%에 달했다. 같은 설문에서 기업들이나 전문가집단 모두 국내 산업융합의 전반적 진전 수준을 시작이나 보급초기단계로 보는 시선이 절반이 넘었다. 몇년 전부터 융합이 중요하다는 걸 주장하면서도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엔 아직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일 터다.


제2회 산학연 전문가 포럼에서도 같은 지적이 쏟아졌다. 중소기업청에서 해당 업무를 맡고 있는 기술혁신국의 김태일 국장은 "다양한 지원과제 가운데 가장 어려운 분야가 바로 '융합'과 관련된 부분"이라며 "내년부터 직접 과제를 선정해 지원을 시작해야 하는데 현재 마땅한 아이디어가 없어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밖에도 선진국 대비 낮은 기술수준, 전문인력 부족, 기업들의 혁신역량 미흡, 관련 규제 및 법 정비 미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직은 부족한 점이 더 많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날 포럼을 주관한 한국산학연협회 김광선 회장 역시 "융합이 중요하다는 걸 다들 인정하곤 있지만 여전히 정부·학계와 기업들간 인식이 차이가 있다"며 "특히 기업들 가운데 중소기업과 대기업들은 처한 상황이 많이 달라 선뜻 발을 맞춰 나가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융합 이후 성공·실패사례 잘 살펴야 =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낙규 융합생산기술연구부장은 "닌텐도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융합은 첨단 기술을 통한 혁신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면서 "새로운 고객가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기존의 기술과 가치를 재조합했으며 새로운 시장을 확대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닌텐도 재기의 시발점이 된 닌텐도DS의 경우 게임기 화면을 소비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터치기술을 적용하고 영어학습, 지능개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등 개발 당시 첨단기술이 적용된 건 거의 없다.


대신 게임기가 한정된 일부만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 기능을 함으로써 가치 재조합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뒤이어 출시된 위(Wii) 역시 기술과 콘텐츠간 융합을 통해 적절한 소비자의 니즈를 읽었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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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에 따른 실패사례 역시 이날 포럼에서 같이 언급됐다. 대표적인 게 혈당센서 휴대폰.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의 박유근 본부장은 "편리한 제품이긴 하나 이 휴대전화를 쓴다는 건 '나는 당뇨환자입니다'라는 걸 주위에 노출해 사용자들이 외면한 케이스"라고 말했다.


관련업계나 전문가들은 산업융합, 기술융합 분야에서도 정책을 통해 드러나는 정부의지가 중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산언연구원의 장석인 성장동력산업연구센터 소장은 "최근 설문에서 기업과 전문가 모두 융합을 위한 여건을 마련하는 데 각종 법규의 유연성이나 포괄성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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