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아인사이트]인도와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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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다이아몬드는 인연이 깊다. 인도에서 다이아몬드 산업이 융성할 때 인도는 크게 번성했으며, 쇠퇴할 때는 인도의 운명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인도의 다이아몬드 산업을 보면 인도의 미래를 점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코이누르(Kohinoor)라는 유명한 보석이 있다. 영국 여왕의 왕관에 박혀있는 다이아몬드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1304년 최초로 발견될 당시 크기는 600캐럿으로 오랫동안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로 명성을 날렸다.코이누르의 원래 소유자는 인도 무굴 제국이었다.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코이누르를 갖고 있던 인도는 당시 세계 최고 부국이었다.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인도가 차지한 비율이 22%에 달할 정도였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면서 인도의 부는 빠르게 유출되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캐낸 다이아몬드도 속절없이 영국으로 넘어갔다. 코이누르는 그 대표적인 예다. 영국 식민지정부는 코이누르를 강탈해 빅토리아여왕에게 바쳤다.

이후에도 인도 다이아몬드의 해외 유출은 이어졌다. 특히 1725년 브라질에서,1866년에는 남아공에서 대규모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면서 인도 다이아몬드 산업은 급속히 쇠퇴했다. 이후 인도는 다이아몬드가 단 한 알도 나지 않는 '다이아몬드 불모의 땅'으로 변했다. 인도 다이아몬드 산업이 죽자 인도의 부(富)도 바닥을 드러냈다. 19세기말 인도의 전세계 GDP 비중은 4%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인도의 쇠락은 지속됐다. 그런 와중에 작은 희망의 불꽃이 타기 시작했다. 역시 다이아몬드였다. 인도에서 다이아몬드 생산이 바닥을 드러내자 인도인들은 가공에 눈을 돌렸다. 20세기 초 많은 인도인들이 다이아몬드 가공 기술을 배우기 위해 벨기에의 앤트워프로 떠났다. 앤트워프는 수백년간 세계 다이아몬드 가공과 유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앤티워프에서 인도인들은 당시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석권한 현지 유태인들로부터 현대적 연마기술을 배웠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뛰어난 연마 기술과 낮은 임금을 무기로 앤트워프 유태인 스승들의 일거리를 빼앗기 시작했다. 인도인들은 처음에 앤트워프의 저가 다이아몬드 시장을 장악했다. 그러다 점차 고가 다이아몬드 가공 시장도 인도인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다이아몬드 원석이 전혀 나지 않는 나라 인도는 오늘날 세계에서 원석을 가장 많이 깎는 나라가 됐다. 액수로는 전 세계 유통량의 60%, 양으로는 85%, 개수로는 92%에 달한다. 인도 구자라트주(州) 수라트는 100만 명의 연마공이 몰려있는 세계 다이아몬드 연마의 허브가 되었다.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의 80%, 세공 다이아몬드의 50%가 거래되는 앤트워프의 주인도 더 이상 유태인이 아니다. 인도인들이 앤트워프 전체 다이아몬드 매출의 약60~70%를 차지할 만큼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요즘 인도인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유태인들의 액소더스(대탈출)가 한창이다. 1세기 전 다이아몬드 산업에서 쫓겨났던 인도인들이 다시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제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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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들은 이제 원석을 깎아 나석을 만드는 단순 가공을 넘어 최종 상품인 '주얼리' 비즈니스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인도인들은 수라트에서 원석을 깎고, 앤트워프에서 나석을 판매하며, 뉴욕에서 주얼리 제품을 파는 등 전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장악한 인도, 옛날의 영화(榮華)가 다시 찾아오는가. 힘 없던 식민지시대에 빼앗긴 코이누르를 되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오화석 인도경제연구소 인디아 포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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