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범자 기자]뜨겁던 7월의 어느 날, 서울 공릉동 태릉선수촌 앞. 오전 훈련을 마치고 나왔다는 그의 얼굴이 반 년 사이 홀쭉해졌다. "살이 좀 빠진 것같다"고 하자 "맘 고생 많이 하니까 살이 안찌던데요" 하며 씩 웃는다. 아직도 '쓴 맛'이 담긴 웃음이었다.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노메달의 충격을 딛고 다시 일어선 스피드스케이팅 간판 스타 이강석(25ㆍ의정부시청). 누구에겐 영광의 순간이었겠지만, 그에겐 너무나 아팠던 올림픽이었다. 상처는 자꾸 드러내야 빨리 아무는 법. 아프지만 올림픽의 기억을 끄집어 내야 했다. "올림픽이 끝난 지 몇 달 됐더라.." 하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더니 그가 씩씩한 목소리로, 아니 자신을 채찍질하는 듯한 목소리로 답한다.


"이제 4년 남았습니다."

"다시 출발선에 선다"
올림픽이 끝나고 4개월 만인 지난 6월 20일 대표팀에 합류했다. 2014년 소치올림픽을 향한 긴 여정의 스타트라인에 다시 선 것이다. 고지대에 위치한 태릉선수촌 태백 분촌에서 3주간의 지옥 훈련을 거쳐 지난달 태릉선수촌에 들어왔다. 매일 새벽 쇼트트랙 훈련으로 하루를 연다. 웨이트 트레이닝 중심의 지상훈련과 스피드스케이팅 훈련을 반복하며 하루 꼬박 8시간을 채운다.


이강석이 대표팀에 합류하던 날, 이규혁과 모태범ㆍ이상화 등 모든 국가대표들이 긴 휴식을 마치고 대표팀에 속속 들어왔다. 윤희중 대표팀 감독은 이강석의 몸 상태가 가장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강석은 "솔직히 다른 선수들(메달리스트)은 이런 저런 행사로 바빴잖아요. 불러주는 데도 많았고 정신없었겠죠. 운동 밖에 할 게 없었던 저랑 비교할 수 있나요" 한다. 여전히 웃음기는 없다. 늦은 점심을 먹던 그는 "자꾸 올림픽 얘기 하니까 입맛이 달아났다"며 멋쩍게 웃었다. 올림픽 후 처음 입을 연 이강석의 아픈 기억을 들어봤다.



"1%의 역전 가능성, 그 마저도 붙잡고 싶었다"
2010년 2월16일. 최근 몇 년 간 캐나다 전지훈련에만 오면 시차적응이 안돼 잠을 설친 그였는데, '그 날'만큼은 처음으로 잠을 푹 잤다. 개운하게 일어나니 느낌도 좋았다. 기분좋은 예감을 안고 경기장에 나가 몸을 풀었는데 김관규 감독이 표정이 안좋았다. 얼음을 다지는 정빙기가 고장나 경기가 1시간 지연됐다는 소식이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경기 지연이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무려 세차례나 지연이 반복됐다. 몸을 데웠다 식혔다를 거듭했다. 수차례 달구고 식히는 과정을 거쳐 단단해지는 무쇠처럼 그의 몸도 딱딱하게 굳어 갔다.


"올림픽처럼 큰 대회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어요. 마치 월드컵 축구 경기 직전 하나밖에 없는 공이 터졌으니 기다리라고 하는 셈이었죠. 징조가 안좋았지만 억지로 생각을 떨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몸은 속일 수가 없더라고요. 몸이 벌써 굳어버려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어요. 마음이 조급하니 실수도 더 생기고.."


1차 레이스 기록은 35초053. 지난 2007년 자신이 세운 세계기록(34초225), 코스레코드(34촣80)와도 큰 차이였다.


"웬만해선 그런 기록이 나올 수가 없었죠. 충격이었고 억울했어요. 그 당시엔 2차 레이스에서 1위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지금 생각하면 1%의 가능성도 없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었죠. 제가 역전하려면 상위 선수들이 줄줄이 휘청이거나 넘어져야 했죠. 하지만 그땐 그 1%에 희망을 걸고 싶었어요."


그리고 펼쳐진 2차 레이스. 이강석은 34초988을 기록하며 70초041로 레이스를 마쳤다. 1차에서 함께 뛰었던 가토 조지(일본ㆍ70초01)에게 간발의 차로 뒤져 4위로 만족해야 했다


"미친놈처럼 울었다"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혜성처럼 한국 빙상을 접수한 이강석은 2007년 세계종별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올림픽 6개월 전 급작스런 맹장수술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특유의 근성과 오기로 이마저도 이겨냈다. 그리고 2010 밴쿠버올림픽 당시 500m 세계랭킹 1위. 단연 금메달 1순위 후보였다.


그는 올림픽 직전 "좋은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꿈 얘기를 묻자 "경기 끝나고 말해주겠다"며 한사코 말을 아껴 궁금증을 자아냈다. 하지만 예상 밖 노메달로 그의 꿈 얘기는 결국 들을 수 없게 됐다. 아픈 얘기를 들춘 김에 그 때 말하려고 했던 꿈 얘기도 듣고 싶었다.


이강석은 한참 뜸을 들이더니 "사실 금메달 따는 꿈이었다. 꿈 속에서는 내 생각대로, 내 시나리오대로 경기가 진행됐다. 깨어나서 너무 현실처럼 생생해 그렇게 될 줄로 굳게 믿었다. 이제 와 생각하니 그게 실수였다. 여러 돌발 변수에 대한 대처를 전혀 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기가 다 끝난 뒤에 도저히 그곳에 남아 있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께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했죠.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과 함께 밴쿠버공항 출국 게이트로 걸어가면서 김관규 감독님께 전화했어요. 죄송하다고. 그러다가 갑자기 울컥했죠. 65번 게이트 앞에서 3시간 동안 대성통곡했어요. 정말 미친놈처럼 엉엉 목놓아 울었어요. 동료 선수들은 상황을 이해하니까 아무 말없이 자리를 피해줬는데 영문 모르는 외국인들은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울어봤어요."


한참 말을 하던 이강석이 갑자기 말을 끊는다. 그의 눈에 눈물이 차 올랐다. 입술도 조금 떨렸다. 그리곤 먹던 스파게티 포크를 내려놓고 소파 깊숙이 몸을 묻혔다. 그리고 이어진 짧은 정적. 이강석은 다시 몸을 곧추 세우더니 "아, 자꾸 올림픽 얘기를 하니까 입맛이 없어지네"하며 억지로 웃어보였다. 아직도 그에겐 극복하기 힘든 충격이었고 악몽이었다.



"마지막 점, 반드시 찍겠다"
귀국 후엔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TV리모콘을 이리저리 돌려도 온통 올림픽 얘기 뿐이었다. 그의 휴대폰엔 부재중 전화 100통이 찍혀 있었다. 어떤 말로도 위안이 되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사이 집안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초상집이 따로 없었다".


"갑자기 화가 났어요. 올림픽이 도대체 뭔데 나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이래야 하나 하고요. 너무 속상해서 집을 나왔어요. 올림픽이고 뭐고 다 잊기 위해 친구들과 강원도 펜션을 찾았는데 거기서 펜션 주인아저씨가 또 묻더라고요. '아니 지금 올림픽이 한창인데 왜 여기 있냐'고. 허허."


두 달이 지나니까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다. 소속팀 의정부시청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말이 시작이었지, 2시간 훈련에 제대로 집중해서 한 시간은 20분이 채 안됐다. 운동기구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다 집으로 돌아온 게 대부분이었다. 올림픽의 아쉬움이 온통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렇게 멍하니 보내던 어느날, 갑자기 올림픽에 완벽해지고 싶어졌다. 마지막 점, 그 점 하나 찍고 싶다는 열망이 솟구쳤다. 다시 운동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게 5월 초였다. 이강석은 내년 2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릴 동계아시안게임에서 500m 2연패에 나선다. 타이틀보다는 기록을 바라보고 있다. 아시안게임은 마지막 점을 향한 과정일 뿐, 그의 눈은 벌써 올림픽을 향해 있다.


"이번 시즌 안정 찾고 다음 시즌에 페이스 유지하면 다음 올림픽에 해볼 만 할 거같아요. 꿈이요? 아직 거창하게 생각해 보진 않았어요. 여기(올림픽)에 올인했으면 여기에 미쳐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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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공항 65번게이트 앞에서 미친 사람처럼 목놓아 울었던 그가, 4년 뒤 러시아 소치에서는 미쳐도 좋을 만큼 유쾌하게 웃는 날이 올까. 그의 세번째 올림픽이 벌써 기대가 된다.




조범자 기자 anju1015@
사진 이기범 기자 metro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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