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우리나라 재정운용의 역사를 보면 뚜렷한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우리나라의 재정은 건국과 산업화·민주화를 거치는 국가발전 과정에서 시대 요구에 부합하는 재정운용을 통해 국가발전을 적극 뒷받침했다. 이러한 재정운용 과정에서 분야별 재원배분의 중점이 국방, 경제, 복지의 순서로 변해 왔다.
둘째 1997년 외완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외하면 최근까지 정상적인 세입 범위에서 세출을 집행함으로써 재정의 건전성에 중점을 뒀다. 부득이 세출을 늘려야 하는 여건에서도 국공채를 발행해 차입을 확대하는 손쉬운 방법으로 재원을 조달하지 않고 방위세(1975년), 교육세(1982년), 교통세 및 농어촌특별세(1994년)와 같은 목적세를 도입해 충당했다.
셋째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으로 인해 재정규모가 커지면서 예산을 절감하고 예산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재정제도 개혁을 지속해 왔다. 성과관리의 강화, 예산운용의 효율성 증진, 투명성과 책임성 향상 등을 통해 양적 증대에 걸맞는 질적 수준 제고를 달성했다.
◆ 정부수립~1950년대 '빚더미 재정' = 광복 이후 우리 재정은 빚더미에서 출발했다. 1949년도 예산을 보면 전체 세입에서 조세의 비중은 10.8%에 그치고 원조 자금이 13.9%, 차입금이 46.4%에 달했다. 조세를 통한 일반 세입보다는 차입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 나라 살림을 꾸려나갔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는 무려 일곱 번에 걸쳐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는데 재원은 전부 차입금이었다. 차입금에 의존하는 적자재정으로 통화량은 급속히 늘어갔고 인플레이션은 점점 심해졌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된 후 한국경제는 외국 원조를 축으로 균형예산을 편성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전쟁에 투입하던 재원을 경제와 산업에 집중 투입했다. 외국 원조자금은 1954년에서 1961년까지 총 20억8800만달러로, 총재정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49.5%에 달했다.
◆ 1960~1970년대 '경제개발·국가안보' =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우리나라는 모든 가용 재원을 활용해 경제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수입 대체산업을 육성하고 수출 주도형 공업화를 추진하던 이 시기에 재정운용은 당연히 이를 뒷받침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따라서 재정은 경제 개발에 집중 투입됐는데 특히 사회간접자본과 산업 분야에 대한 자본적 지출인 재정투용자를 중점적으로 확대했다.
재정규모에서 재정투융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제1차 계획기간(1962~1966년)에 연평균 23.1%, 제2차 계획기간(1967~1971년)에 29.6%, 제3차 계획기간(1972~1976년)에 32.6%, 제4차 계획기간 (1977~1981년)에 33.8%로 점차 증가했다. 그야말로 재정이 국내총고정자본 형성에 절대적으로 이바지하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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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경제개발 분야 외에 집중적으로 투자된 분야는 다름 아인 국방이었다.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 구도가 본격화된 상황에서 국방력 강화는 가장 절실한 문제였다. 1960~1970년대에는 국방 분야가 재정지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8%에 달해 경제분야 27%, 교육분야 15%, 복지분야 8%를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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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광 기자 kohk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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