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0주년]잊지말자 6.25 ⑦학도병 경남이 가장 많았다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6.25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펜 대신 총을 잡은 학도병은 27만 5200명정도다. 이들은 한국전쟁 발발때부터 1951년 4월까지 대한민국 학생신분으로 지원해 전후방에서 전투에 참가하거나 치안유지, 간호활동 등을 했다.
학도병은 무엇보다 전쟁 초기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6·25 발발 당시 한국군은 ‘국군의 병력은 10만명을 초과할 수 없다’는 미군과의 협정에 따라 징병사업이 거의 중단된 상태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학도병들의 참전은 병력 수급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다. 이들은 안동전투와 다부동전투, 안강전투, 영천전투, 포항전투 등 대규모 전투에 직접 뛰어들었다. 여학생들도 학도의용군에 참가하기도 했다.
군사편찬연구소에서 펴낸 한국전쟁 통계집에 따르면 학도병으로 지원한 학생수는 지역별로 경상남도 6만 5000명, 경상북도 5만 6000명, 충청남도 4만 2000명, 전라북도 2만 7200명, 전라남도 2만 3800명, 경기도 2만 3500명, 충청북도 2만 1500명, 서울 6700명, 강원도 6500명, 제주도 3000명이다. 경상남도 학생들이 가장 많이 지원했다.
이들은 14세에서 17세 소년으로 국제협약으로 징집이 불가했다. ‘국가비상동원령’에 의한 징집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 나이였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전쟁에 동원된 이들은 낙동강 전선 등에서 총알받이로 채 쓰러져갔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도 정부에서 훈포장을 받은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다. 이에 징집된 소년병들은 그동안 정부에 정당한 보상을 요구해왔지만 아직 정부는 징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56년이 흘렀고 참전 소년병들 중 이미 사망한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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