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삭 성당앞 공원.

성 이삭 성당앞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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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던 겨울이 어느새 지나고 앙상했던 나뭇가지엔 푸른 잎사귀가 울창하다. 모두가 애타게 기다렸던 여름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여름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울창한 숲, 강렬한 태양, 백야, 거리마다 있는 공원 그리고 아름답게 빛나는 네바강. 한국에 있을 때에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러시아의 또 다른 모습이다.

여름이 오고 가장 먼저 달라진 점은 도시 전체가 활기에 넘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긴 겨울 잠에서 깨어났다.’고 표현하고 싶다. 겨울 내내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크고 작은 공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공원에 모여 수다를 떨거나 한가롭게 시간을 보낸다. 가끔씩 나도 친구들과 음료수를 들고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여유를 즐기는데, 한참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자면 이거야말로 유학생이 즐길 수 있는 소박한 사치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피의 사원 인근 공원.

피의 사원 인근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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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로 한층 바빠졌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관광도시답게 카잔 성당, 피의 사원 같은 관광 명소들은 전 세계, 러시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왠만한 관광지에는 크고 작은 버스가 북적이고, 냅스키 대로에선 지나가는 여행객들에게 관광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연일 확성기를 들고 광고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때 카잔 성당을 지날 때마다 관광객이 이렇게 없어서 어쩌나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 걱정은 괜한 기우였다.


겨우내 얼어있던 네바강은 어느 새 녹았고 햇볕이라도 쨍쨍한 날이면, 태양에 반사되어 찰랑거리는 네바강의 물결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사람들은 주말이면 강가에 나와 일광욕을 즐긴다. 나도 가끔 여기 사람들처럼 일광욕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역시 그간 살아온 방식이 있어서인지 수영장이나 바다가 아닌 곳에서 수영복만 입고 태양빛을 즐길 용기가 쉽사리 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최근에는 일광욕 대신 다른 관광객들처럼 유람선을 타고 네바 강을 따라 도시를 돌아봤는데 강에서 보는 땅 위의 모습은 직접 걸으면서 보던 모습과는 또 달랐다. 가슴까지 탁 트이는 이 상쾌함은 참 오랜만이었다.


[영피플&뉴앵글]'천국의 여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색다른 경험 원본보기 아이콘


낮이 길어진 것도 새로운 모습이다. 요즘엔 밤 12시는 되야 어둑해지고, 새벽 3시면 날이 밝아온다. 아직 하루 종일 밝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백야가 시작되었다고들 말한다. 저녁 7~8시는 대낮처럼 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유롭게 시간을 활용한다. 내 경우에도 수업이 끝난 후 박물관을 다녀온다든지 어디론가 산책을 다녀오기도 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백야! 지루하게 길었던 겨울에 대해 사과라도 하듯 여름이 가져다준 선물인 것만 같다.


“여름에는 천국이 따로 없다던”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그 때는 별 생각없이 흘려들었던 말인데 이제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힘차게 솟아오르는 분수를 보면 가끔 한국의 여름이 생각나곤 한다. 자연 속에서 여름을 나던 한국의 모습과는 분명히 다르다. 공원에서 분수를 보며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 이 곳 사람들은 그들 뜻대로 환경을 변화시켜 여름을 보내는 느낌이다. 하지만 단순히 인간만을 위해 환경을 변화시키지 않고, 나름대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여름을 보낸다는 인상을 받았다. 매미소리 가득한 한국의 여름이 전부인줄 알았던 나에게 이 곳에서 보내는 여름은 색다른 경험이다. 내 생애 조금 특별한 여름이라고 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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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하나
정리= 박종서기자 jspar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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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하나씨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하던 중 연수차 러시아로 떠났다. 처음에는 한국에 대한 그리움도 많았지만 이제 '러시아의 진짜 매력에 눈을 떴다'고 말할 만큼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지금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서 러시아어를 배우며 유학생활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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