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6개월 이재오 권익위원장 '현장 행정' 촉구
"억울한 국민 단 한사람도 없게 만드는 것이 목표"
"이동신문고 민원 폭주..정치권 복귀는 시기상조"
[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현대판 암행어사'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65)이 지난 달 29일로 취임 6개월을 맞았다.
그는 현 정부에 몸담고 있는 고위 공무원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존재임 틀림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데다 국민권익위원장으로서 '이동신문고'를 운영하면서 지역민의 목소리를 반영해 탁상 행정을 뜯어고치겠다고 외치고 있는 탓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향후 정계복귀를 위한 디딤돌이라고 수군대기도 하지만 그는 이에 개의치 않고 강행군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더욱이 국민 권익을 증진한다는 기관 이름에 걸맞게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그에게 지역민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는 커녕 큰 박수를 보내고 있다.
국민의 공복 역할을 해야할 공직자들과 주민들 간에 우뚝 선 벽을 허무는 데 이 위원장이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탁상행정이라는 낡은 관습을 도려내고 현장 행정이라는 새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뛰고 있는 이 위원장을 아시아경제신문이 따라가봤다.
지난달 25일 충남 예산을 찾은 이 위원장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며 지역민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이 위원장은 "그동안 현장을 다니면서 서류만으로는 지역민들의 애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면서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걷어내는 힘쓰고 특히 공직사회에 청렴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억울함을 느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게 만드는 게 목표"라는 이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자리를 옮기는 차안에서 틈틈이 이뤄졌다.<대담=조태진 기자>
-취임 6개월을 맞게 됐다. 그동안 느낀 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많은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특히 서류로 해결할 수 없는 민원은 현장만 들여다보면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장·차관급 고위공무원들이 책상에 앉아서 보고만 받아서는 지역민 애로사항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됐다. 앞으로 탁상행정을 현장행정 위주로 바꾸도록 여러가지 방안을 마련해야 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아울러 법과 제도가 엄연히 있는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점과 녹이 슬어있는 곳을 벗기는(중복 규제 등 제도적 맹점에 대처하는) 노하우를 습득한 것이 소득이라면 큰 소득이다.
-지금까지 몇 곳을 다니셨나.
▲이동신문고는 물론,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에도 현장 방문을 했다. 그것까지 합치면 올들어 100군데 이상 방문한 것 같다. 권익위원장 취임한 이후 근무일수가 130일 정도다. 국회 출석과 해외출장 등을 빼면 112일 정도다. 위원장이 된 이후로는 311곳 다녔다.
생각해보니 부지런히 다닌 것 같다. 그래도 현장에서 접수한 민원이 90% 이상 해결돼 힘든 모른다.(실제 권익위가 지난 23일까지 집계한 주민 건의 및 애로사항은 1326건이며, 이 가운데 1206건을 조치해 해결율이 90.9%였다.
-기억에 남는 해결사례가 많을 텐데요.
▲물론이다. 속초비행장 인근 고도제한을 완화시킨 것이나 울진군의 아파트 단지 안에 방치된 학교 부지를 체육시설로 돌린 것은 뇌리에 깊이 남아 있다. 목포시 연산동 백련마을 택지개발사업을 조기에 시행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한 것도 대표 해결사례로 꼽을 수 있겠다. (권익위는 이밖에 88올림픽고속도로 방음벽 추가 설치, 밀양 창녕 청도 고압선 민원조정, 장기 미준공 빌라 입주민 재산권 행사 제약 해소, 전남 순천 철도횡단 도로 및 육교 설치 등 7건의 집단민원을 해결했다.)
잊혀지지 않을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특히 지난 겨울 비닐하우스에 마련된 야외 이동신문고에서 민원을 듣느라 강추위에 떨었던 것은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또 충북 괴산 통천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마련해 준 생일 아침상을 받았을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이러니 힘이 더 나고 그래서 더 자주 현장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많은 민원을 해결하려면 예산도 필요할 텐데 문제가 없겠나.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예산은 확보돼 있는데도 온갖 각종 규제가 겹쳐 적용되는 탓에 해결되지 못한 민원들이 매우 많았다. 새롭게 제기된 지역민의 요청은 예산도 감안하지만, 투입 대비 산출이라는 생산적인 효과를 고려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해당 부처에 요청하고 있다. 크게 무리되는 부분은 없다고 본다.
-공직자 청렴도 평가 도입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반발 기류가 있을 것 같은데
▲말이 많을 지 몰라도 기관 청렴성과 투명성을 평가하는 것은 우리 권익위 본연의 임무다. 이 문제에 관한한 이론의 여지가 없다. 더욱이 몇몇 부처는 고위공무원에 대해 이미 평가제도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권익위 생각은 분야별로 제각각 으로 진행되는 것을 총괄·취합해서 더욱 더 실효성있게 운영하자는 것이다. 앞으로 청렴도 평가도 열심히 하겠지만 장·차관급과 고위 공직자들의 현장 행정 방문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도 검토할 생각이다.
-제도적인 장치란 구체적으로 뭔가.
▲고위공직자 청렴도 평가 등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항목에 현장 행정 실적을 반영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말로만 '현장행정' '현장행정'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시스템으로 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고위 공직자 업무 수행 성적에 현장 방문 횟수, 애로사항 해결 현황 등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한다면 확실히 나아지지 않겠냐는 게 내 생각이다.
-다른 얘기 하겠다.지금은 선거철이다. 때문에 위원장의 정계 복귀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2년 넘게 남은 임기는 채우실 요량인가 궁금하다.
▲지금 내 머릿속은 현장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다. 다른 문제가 개입할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 민원이 폭주하고 있는데 정치권 복귀 생각을 한다면 이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 무엇보다 강도 높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우리 위원회 사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다. 정무직 공무원 임기는 임명권자가 알아서 할 일 아니겠는가.
-현 정부의 지난 2년 국정 수행에 대해 80점을 주신 적이 있다. 이유가 있나.
▲이 정부는 남북문제, 일자리 창출 등 친서민 정책 등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다만 올해 안으로 정치개혁 부분에서도 성과를 낸다면 90점까지 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중점 추진할 사항이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
▲나열하자면 수없이 많다. 꼭 꼬집자면 우리나라가 산업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 각 부문에 부패가 어느 정도 용인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것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싶다. 기업 투명성이 높아지는 등 긍정적인 신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직자들의 청렴 문화는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아 있다.
공직자가 모범을 보여야 그 사회가 건강해지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변화를 이끌어내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한 축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아울러 교육, 농촌, 기업 등 각 부문의 권력 유착이라는 어두운 측면들이 없어지는 기반을 마련하는데도 힘쓰겠다. 억울한 국민이 단 한사람도 없게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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