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사람 물러나자 자연 돌아왔다"…순천만 습지 20년 복원의 기적
전남 순천시 순천만 습지는 '복원의 교과서'로 불린다. 한때 식당과 도로, 주차장으로 빼곡히 채워졌던 공간이 20여 년에 걸친 정책적 선택과 주민 협력을 통해 세계적인 생태 거점으로 탈바꿈했다. 현장을 찾은 탐방객들은 "사람이 물러나자 자연이 돌아왔다"는 설명을 눈으로 확인하고 체감하며 감탄했다.
지난 21일 찾은 순천만 습지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이었다. 이곳은 국내 최대 규모의 염생식물 군락지로 꼽힌다. 갈대와 칠면초 등 염생식물은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식물들로, 최근에는 '블루카본'의 핵심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해양 생태계에서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데, 육상 식물보다 탄소 흡수 속도는 최대 50배 빠르고 저장량은 5배 많다는 분석이 있다. 기후 위기 대응 측면에서도 순천만의 생태적 가치가 재조명되는 이유다.
갈대밭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 생태계의 기반이다. 배를 타고 바다 쪽으로 갈수록 갈대의 키가 낮아지는 모습은 염분 농도에 따른 생존 전략을 그대로 보여줬다. 염생식물은 소금기를 견디기 위해 체내에 염분을 축적하며, 그 과정에서 붉은색을 띠는 칠면초 같은 식물이 형성된다. 척박한 환경에서의 생존이 오히려 생태계 다양성을 키우는 기반이 되는 셈이다.
순천만의 또 다른 특징은 '생명의 중간기착지'라는 점이다. 이곳에서는 국내 기록 조류 580종 가운데 252종이 관찰됐다. 특히 겨울철이면 흑두루미를 비롯한 80~90종의 철새가 이곳에서 월동한다. 순천시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약 8600마리의 흑두루미가 순천만에서 겨울을 보냈으며, 인근 남해안까지 포함하면 9600마리 수준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한때 일본에 집중됐던 개체군이 점차 분산되면서, 순천만을 중심으로 남해안 일대에 '흑두루미 벨트'가 형성되고 있다.
봄철에는 또 다른 이동이 시작된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월동을 마친 도요·물떼새들이 알래스카와 시베리아 번식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순천만에 머문다. 이들은 장거리 이동 과정에서 체중의 절반 이상이 줄어든 상태로 도착해 갯벌에서 먹이를 섭취하며 에너지를 보충한다. 갯벌이 훼손될 경우 이들의 이동 경로 전체가 위협받는 이유다. 순천만은 단순한 서식지를 넘어, 국제적 이동 경로를 지탱하는 핵심 거점이다.
갯벌 역시 중요한 생태 자원이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세 입자와 유기물이 결합한 복합 생태계다. 전체의 90% 이상이 미세 입자로 구성돼 있으며, 저서생물들이 끊임없이 구멍을 뚫으며 산소를 공급해 부패를 막는다. 짱뚱어, 갯게, 각종 조개류는 물론 어류 산란장 역할도 수행한다. 순천만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으로, 다양한 생물이 공존하는 '생명의 저장소'로 평가된다.
탐방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흙길을 조성해 사람의 흔적을 최소화했다. 일부 구간은 철새 보호를 위해 계절별로 출입을 통제한다. 관광객 수를 늘리기보다 생태 가치를 이해하는 방문을 유도하는 정책도 지속되고 있다. 순천시는 "많이 오는 것보다 제대로 보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 뒤에는 사람들의 선택과 시간이 있었다. 순천만이 전환점을 맞은 것은 2003년 습지보호지역 지정 이후다. 당시만 해도 방문객이 드물어 "관광객도 없는데 전기세는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2006년을 기점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순천시는 '새의 눈높이 복원'이라는 원칙 아래 갯벌과 주변 육상부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순천시는 2008년부터 인간 중심으로 조성됐던 식당가와 도로, 주차장을 과감히 철거하고, 생태계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했다. 단순한 정비가 아닌 '되돌림'에 가까운 접근이었다.
식당과 상업시설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주민 보상과 협의를 병행했다. 초기에는 생계 문제로 반발도 적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인식이 달라졌다. 생태계가 회복되면서 어획량이 증가하고 지역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자, 보전이 곧 경제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지난 20년간 순천만의 변화를 직접 확인해온 황선미 순천만보전팀장은 "인근 어민들 스스로 '갈대도 보존해야 할 자원'이라고 말할 정도로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변화는 국제적 평가로 이어졌다. 순천만은 국내 갯벌 가운데 처음으로 람사르습지에 등재되며 보전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후 한국 갯벌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과정에서도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순천만은 단일 지역을 넘어 한국 갯벌 보전 정책의 상징적 사례로 자리 잡았고, 현재는 세계 각국 연구자와 탐조객이 찾는 생태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국제적 관심도 확대되는 추세다. 최근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 탐조객과 연구자 방문이 늘고 있으며, 국제학술 교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세계유산 관련 행사와 연계해 순천만 사례가 소개될 예정이며, 향후 여수와 고흥 등 인근 지역까지 세계유산 범위가 확대되면 광역 단위의 생태 보전 협력도 강화될 전망이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발표 15분 전' 소름 돋는 타이밍 "또 미리 알았나...
친환경 선박 도입, 탐방 인프라 개선, 지역 간 협력 체계 구축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그런데도 정책 방향은 한결같다. 개발 대신 보존을 선택한 결과가 생태와 경제를 동시에 살릴 수 있다는 점 분명히 했다. 잔잔한 수면 위로 드나드는 바닷물처럼, 순천만의 변화는 조용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