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강미현 기자] 과도한 레버리지와 이에 따른 신용 경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원인은 명료했다.
하지만 파산 보호 1년만에 나온 분석 보고서는 무려 2200페이지에 이르는 분량만으로 150년 역사의 금융회사의 몰락 원인을 한 마디로 단정짓기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했다.
법률회사 제너&블록의 안톤 밸루카스 변호사가 파산조사관으로 일하면서 작성한 리먼 브러더스 파산 보고서는 몰락의 원인을 상세하게 파헤쳐 세간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리먼 파산은 리스크 불감증과 도덕적 해이, 여기에 오만함까지 두루 갖춘 경영진과 온갖 부조리한 경영 실태를 덮어준 감사법인, 그리고 사태를 일찌감치 알아차리고도 안이하게 대처했던 감독당국까지 '3박자'가 초래한 결과였다.
◆ 위기 부른 오만함 = 주변에서 결과가 좋으면 그 과정까지 미화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리먼 경영진의 고위험 투자도 리먼이 수익을 낼 당시까지는 역발상 투자로 칭송 받았다. 리먼에는 당시 월가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있었고 이들은 신종 투자 수법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금융 엘리트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지난 2007년 다른 서브프라임 투자업체들이 모두 위험성을 인지하고 익스포저를 줄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을 때도 리먼은 이를 오히려 기회로 봤다. 9.11테러로 주가가 급락했을 때 공격적인 투자로 큰 수익을 올렸던 리먼은 당시에도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던 것.
문제는 자신감이 지나쳐 오만함에 이르렀다는데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10월 역발상 투자의 일환으로 부동산 개발업체 아치스톤-스미스 트러스트를 인수한 리먼은 이 거래가 10년간 13억달러의 수익을 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으로 리스크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222억달러 규모 계약이 미칠 파장을 가늠하는 스트레스테스트를 시행하지 않았던 것. 리먼은 이 거래로 54억달러의 매각하기 어려운 부동산 익스포저를 보유하게 됐다.
고위험 투자 계약을 주도했던 마크 월시 당시 리먼 글로벌 부동산그룹 헤드는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을 아부다비 투자청을 비롯한 투자자들에게 넘길 요량이었으나 이후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면서 불발, 리먼에 큰 부담으로 남게 됐다.
아울러 월시는 2008년 보너스가 지급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에 자산 상각을 과도하게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너스가 재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2009년 실적을 부풀려 더 많은 보너스를 얻어내겠다는 의도에서다.
리먼 경영진의 오만함은 이 뿐 만이 아니다. 리차드 풀드 전 리먼 회장은 헨리 폴슨 전 미 재무장관의 수차례 파산 경고를 무시했고, ‘자산을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리스크관리책임자를 해고했다. 한 술 더 떠 대출 상한선을 3차례 상향 조정, 위험도를 높였다.
◆ 다시 떠오른 엔론의 추억 = 리먼은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부실을 감춰야 했다. 리먼은 금융 엘리트 집단답게 이른바 ‘레포(Repo) 105’라 불리는 부실을 감출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고안해 냈다.
레포 105란 105달러짜리 채권을 담보로 100달러의 돈을 빌리는 방식이다. 리먼은 이를 자산매각으로 처리하고 만기가 도래하면 다른 레포 거래를 통해 돌려막아 담보로 제공한 채권을 매각하는 일종의 눈속임으로, 500억달러 부채를 일시적으로 회계장부상에서 숨겼다. 리먼의 2008년 2분기 레버리지 비율은 12.1이었지만 정상적인 회계방법에 따르면 이 수치는 13.9가 됐을 것이라고 밸루카스의 보고서는 전했다.
리먼 내부에서도 이를 놓고 사실상 윈도드레싱(분식회계)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리먼은 회계 문제를 제기하는 내부고발자를 해고하면서 문제를 덮으려 했다.
당시 회계법인 언스트앤영은 리먼의 회계 문제를 묵인했는데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를 엔론 사태에 비유했다. 기업과 회계법인과의 유착이 기업의 파산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리먼과 엔론 사태는 공통분모를 가진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리먼의 크리스 오메이라와 최고재무책임자는 언스트앤영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내부의 도덕적 해이가 리먼을 운명을 재촉했다는 얘기다. 이후 부동산 경기 악화로 부실채권이 급증한 가운데, 씨티그룹과 JP모건이 추가 담보물을 요구하는 등 유동성 경색이 심화되자 리먼은 파산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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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당국도 안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레포105의 문제점을 알아차리고 있었지만 이를 바로잡는 데 적극 나서지 않았다. SEC가 강제성과 구속력을 동원해 '문제 행위'를 단속할 만한 권한을 갖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책임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한 변명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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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현 기자 grob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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