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얼마 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된 사진 한 장에는 국내 IT업계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KAIST 주역들의 현재'라는 이 사진에는 카이스트의 내로라 하는 주인공들이 모두 의사 가운을 입고 있었다. 이공계 대학생들이 느끼는 불안과 고뇌가 '백색(白色) 가운'에 그대로 녹아 있는듯 했다.


정부가 31일 한국의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를 키우기 위한 야심찬 계획을 내 놓았다. 한국 소프트웨어(SW)산업을 이끌 10명의 핵심 인재를 선발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2월 발표한 'SW강국 도약 전략'의 후속 조치인 셈이다.

정부가 SW의 중요성을 깨닫고 적극적 투자를 통해 SW인재 육성에 나서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두손들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과연 구호에 걸맞게 실효성 있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사실 엄밀히 얘기하면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SW개발자가 아니다. 두 사람이 글로벌 IT업계의 거물이 된 것은 남들보다시대의 변화를 읽고 빨리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들이 우연히 지나친 기술이나 서비스에 특유의 사업 노하우를 첨가하거나 새로운 시각을 얹어 새로운 제품을 내놓음으로써 IT세상을 지배하게 됐다는 얘기다.

이런 사례는 국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이나 이해진 NHN 이사회 의장 이 우선 떠오른다. 두 사람 역시 SW개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 아니다. 김 사장은 온라인 게임이 향후 게임 시장을 지배할 것으로 내다보고 전력투구 해왔고, 이 의장 역시 하이텔, 천리안 등의 PC 시장이 영원할 것 같았던 시기에 과감하게 인터넷 포털에 뛰어들면서 성공 신화를 일궈냈다.


단순히 SW개발자 육성에 투자한다고 해서 제2의 김택진이나 이해진 등 IT거물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아이디어와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가질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아이디어를 현실화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환경부터 먼저 조성해야 한다. 이것은 결국 SW산업의 전반적인 생태계조성으로 범위가 확대돼야 할 것이다.


요즘 SW 업계는 1980년대 자동차 업계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중소 개발자가 일제 자동차 부품보다 우수한 제품을 개발해도 대기업에서 아예 만나주지도 않던 시절과 유사하다는 얘기다. 영세한 SW벤처 기업들이 제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대기업과의 협력은 요원하기만 한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갖추고도 연결고리가 부실해 사장되는 경우도 숱하다. 벤처기업도 이럴진대 1인 창업자인 SW개발자들의 고통은 이루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트위터나 블로그 사용자들이 정부의 야심찬 SW진흥계획에 비아냥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현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기업과 영세벤처간 상생을 통해 좋은 아이디어가 사장되지 않도록 끌어주고 밀어주는 풍토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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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대기업과 중소 개발자간 진정한 파트너십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규제를 풀어주는 등 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 이같은 상생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SW핵심 인력 10명을 인위적으로 양성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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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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