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난해말 오너가의 승진 잔치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도미노 효과 처럼 승진 물꼬가 트이다 보니 대부분이 기다렸다는 듯 전격적인 승진을 단행했다. 기업별로 편차는 있었지만 나이나 경력, 능력 등은 일단 뒤로 한채 분위기 편승의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아들과 딸의 구별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너가의 승진은 비중있는 뉴스임에 틀림없다. 이래저래 뉴스 처리를 하다보면 상당히 복잡해서 가끔 혼동을 자아낸다. 특히 형제간 경영이나 사촌간 등이 얽혀있으면 누구의 몇째 아들이니 하는 식으로 해야 하기 때문. 재벌가가 3, 4세로 바통이 넘어가자 오너 승진자 한 사람의 족보를 따지는데만 해도 많은 품이 든다.
잇따른 승진 소식에 문득 떠오른게 바로 재벌가 자녀들이 거의 대부분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공통점. 종전 2세까지만 해도 경영과 상관없는 인물이 항상 있어왔다. 그중에는 의사나 교수도 있고 법조계나 정계에 몸을 담거나 또는 경영과 상관없는 공부를 하는 사람이 꼭 있었던 것. 그런데 3, 4세로 내려온 지금 시점에서 경영에 참여하지 않은 재벌가 자녀는 눈을 씻고 봐도 없을 정도가 됐다. 아직 학생 신분인 경우를 제외하고,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가도 느닷없이 경영에 참여하는 일도 허다해졌다. 더구나 한때는 딸들에게 '금녀의 땅'이었던 경영에서 딸들도 지금은 거의 대부분 참여하고 있을 정도.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재벌가 자녀들이라면 누구나 경영DNA를 타고난 때문일까. 아니면 경영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될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들은 가업승계나 경영참여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인 것인가하는 의문마저 든다.
여기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오너 티켓을 쥔 이들은 갈수록 많아지는데 소유할 수 있는 파이는 정해져 있다는 것. 오너가는 시간이 갈수록 대를 이어가는데 공동경영은 사실 과거의 학습 효과로 비춰 볼때 '불가(不可)'할 것이다. 그렇다고 기업규모를 무한정 키우며 마냥 핵분열할 수 있는 여지도 한계가 있다. 결국 분가만이 해답인데, 쪼개고 쪼개고 하다보면 기업은 경쟁력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실례로 금호아시아나의 경우 한때 형제 경영이니, 황금분할이니 하면서 그룹 경영의 새로운 롤 모델로 떠올랐다. 그런데 대우건설 인수라는 결과적인 패착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좌초하게 됐다. 금호아시아나도 결국은 사촌간 오너들로 북적이는데 몫을 떼주려면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싶다. 고속성장 시대에서야 파이를 키우는게 가능했다지만 지금은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해야 하는 절박감이 더욱 커지는 시대다. 오늘도 대권을 넘겨주려는 기업 총수들은 분가와 쪼개기라는 당면한 과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듯 하다. 기업이 우선이냐 자식이 우선이냐는 번뇌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건 아닐까. 심심찮게 나오는 재벌가 미성년자 주식 부자 뉴스는 끊이지 않을 대물림의 악순환(?)을 연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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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는 오래전부터 그의 세 자녀에게 전체 재산의 5000분의 1에 불과한 1000만 달러만 물려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녀들이 나중에 커서 회사 일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자녀들이 회사 경영에 참여하면 그들이 '특별한 지위'를 가져야 하느냐를 놓고 기업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기업경영은 이제 한 가계의 사업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 동력이다. 분가와 쪼개기로 기업이 시너지 효과를 잃게 할 수는 없다. 파이 확대의 당위성도 떨쳐 버려야 한다. '무소유'의 가르침을 설파한 법정 스님의 입적을 계기로 기업 총수와 오너가들이 대승적인 생각을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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