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인 형제의 서울 생활기


[아시아경제 김유리기자] 저의 이름은 김동규입니다. 이제 세살이예요. 저의 아빠는 네팔에서 온 세살디네스 하라천(36·서울시 숭인동)입니다. 이제부터 저의 가족의 한국 생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저는 요즈음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데요, 어린이집 친구들 중 가장 넓은 인맥을 자랑해요. 방과후 달려가는 아빠와 삼촌의 식당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나이와 성별, 국적을 뛰어넘어 모두 저의 친구들이거든요.

네팔 커리 레스토랑 '뿌자' 1호점에선 제가 없어도 절 볼 수 있어요. 입구에서부터 엄마, 아빠와 활짝 웃고 있는 저의 가족사진이 손님들을 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가게 안으로 조금 더 들어서면 여기, 1호점을 경영하는 삼촌이 보이네요.


삼촌은 디페스 히라천(25·서울시 숭인동·남). 역시 네팔인이에요. 2005년 7월 쌍둥이처럼 닮은 친형인 우리 아빠의 초대로 한국으로 왔대요. 한국인인 형수와 결혼해 귀화한 형의 결혼식 참석차 왔다가 형이 차린 1호점을 맡게 됐대요.

사실 삼촌은 당시 영국 유학을 꿈꾸고 있었대요. 네팔에서 다니던 JCA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는데 관련 공부를 더 하고 싶어했거든요. 가끔 삼촌은 공부를 계속 하지 못한 부분을 아쉬워하지만요, 형의 일을 돕고 있는 지금의 생활도 만족한대요. 한국 생활에도 거의 완벽히 적응했고요.


삼촌은 여가시간에 친구들과 쇼핑, 영화,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술을 즐깁니다. 게다가 롯데월드를 아직도 재미있어하는 순수한 영혼이에요. 요즈음은 한국방송 드라마 아이리스에 푹 빠져있는 눈치더라고요. 가수 백지영의 목소리에는 독보적인 감성이 베어 있어 발라드가 적격이라고 제게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데, 어휴~ 생김새도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아서는, 제가 보기엔 완벽하게 적응을 한 것 같아요.


삼촌의 1호점에서 10분 거리에 아빠의 2호점이 있어요. 동대문구 일대의 직장인들이 주 고객인 이곳은 작년에 아빠가 매출확장을 위해 차린 곳입니다. 아빠는 여름휴가 때 강원도 바닷가에서 극적으로 만난 엄마와 2003년에 결혼하고 한국으로 귀화했는데요, 이름은 그대로 히라천 디네스에요. 네팔 출신으로서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대요. 아빠도 길가다가 한국 사람이 길을 물을 정도로 완전 한국 스타일로 생겼거든요.

요즈음 아빠의 최대 고민은 '한국 속 네팔인'입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네팔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일을 하기에 바빴고, 그로 인해 점차 네팔을 잊어가는 모습이 아빠는 안타까웠대요. 자신의 고향인 네팔 사투리도 잊어버릴 정도였다니까 그 정도를 알만하죠. 네팔인들의 커뮤니티가 절실하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한국에 네팔식당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아빠는 2003년에서 2005년까지 직접 요리하며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아빠는 현재 주한네팔인협회에 부회장을 맡고 있어요. 네팔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결혼해 그 2세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 즈음이 됐어요.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와 더불어 네팔 문화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 어떻게 알릴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네팔인 부모들의 초미의 관심사에요. 아빠도 예외는 아니죠. 점점 커가는 저로 인해 고민이 많으신 눈치랍니다.


그래서 아빠는 협회를 통해 한국 내에서 네팔 문화를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어요. 그 대표적인 예가 '붓다 네팔'이예요. 부처가 태어난 곳이 네팔인데요, 작년 아빠의 협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한국 사람들의 85%는 부처의 출생지를 인도로 알고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성지 순례는 네팔로 가자'는 요지의 '붓다 네팔' 캠페인을 꾸준히 진행 중입니다. 아빠는 네팔 관광 진흥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행사는 설·추석 명절에 가장 크게 열리는 네팔 커뮤니티 콘서트에요. 네팔 현지에서 가수를 초청해 공연도 하고요, 우리 가게에서는 그 기간 동안 음식을 뷔페식으로 진열해 함께 즐기는 이벤트도 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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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에는 축제에 참석하기위해 부산에서 오는 사람도 있어요. 지난 추석에는 동대문구 일대가 온통 네팔 사람들이었을 정도였지요. 뷔페 이벤트 아이디어는 동대문 일대에서 우리 가게가 맨 처음 냈는데 이제 다른 네팔 식당들도 하고 있어요.


아빠는 일단 네팔이 잘 사는 나라가 돼야한다고 늘 말씀하세요. 젊은 인력의 외국 유출이 너무 심하니 내수산업이 발달할 수 없다고요. 산업이 부흥할 자본금도 없기 때문에 외국에 나와 있는 네팔인 커뮤니티들이 역할을 해줘야한다는 생각이에요. 네팔에 투자를 하고 싶어도 이제 외국인 신분이 돼 그마저도 어렵다는 아빠는 오늘도 한국 속의 네팔과 네팔인에 대해 많이 생각한답니다. 이제 네팔과 한국은 한 가족이 된 거죠?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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