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일들도 많지만 이러저러한 사정 때문에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삶의 울타리 밖을 나가지 못하고 그 안에서만 살아갑니다.


서울 근처에 중남미 문화원이 있다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들었습니다. 저는 다른 어떤 것보다 볶음밥과 비슷한 스페인 음식 빠에야가 그리워서 꼭 한번가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습니다. 마침 소중한 분들과의 모임이 있어 겨울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아파트단지를 지나 자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에 이르니 한옥 여러 채가 모여 있는 향교와, 스페인의 붉은 벽돌집을 연상시키는 건물 몇 채가 이웃하고 있었습니다. 담장 안으로 들어가니 잘 정리된 나무, 유럽의 광장에서 만났던 조그만 분수대, 멕시코 의상을 입고 있는 여인의 조각, 아르누보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벤치들이 눈에 들어오며 금방 먼 나라로의 상상 여행이 가능했습니다.

여든 가까운 부부가 반갑게 손님을 맞으셨습니다. 오랜 외교관 생활을 중남미 지역에서 보내며 취미삼아 모으다 보니 박물관까지 열게 됐다고 합니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저 잉카, 마야, 아즈텍 등의 단어로만 상상하는 지구 반대편의 생활을 친근하게 느끼게 됐습니다.


깔끔하게 양복을 입으신 노신사 이복형 원장님께서 이곳저곳을 직접 열심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수집품 하나하나에 담긴 추억까지 얘기해 주시며 고집스런 ‘할망구’ 때문에 매일 정원의 나무를 직접 손질한다며 불평하셨지만 그 말씀이 참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빨간색 립스틱까지 칠하고 곱게 단장한 문화원의 안주인이신 홍갑표 이사장님께서는 외교관 부인으로 지냈던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중앙홀 천장에 있는 금빛 태양상 나무 조각이 수 십 년을 먼 나라에서 한국인으로 살았고, 지금은 한국에서 그 나라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빙그레 웃는 것 같았습니다. ‘문화는 소유가 아니라 나눔이다’라는 말에 우리 모두는 공감했습니다. 두 분만의 왕국에서 추억을 나누며, 소유하고 있던 문화를 나누어 주려고 열정적으로 사시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부모님 밑에서 세상걱정 없이 뛰어 놀다, 성인이 되어 이 세상 어디에 있는 반쪽을 찾고, 자식 키우며, 돈 벌며 야단법석의 세월을 보내다보면, 어느 듯 자식들은 훌쩍 떠나버려 둘 만 덩그러니 남게 됩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볼 시간 없이 늘 눈앞에 보이는 것만 그때그때 해결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같은 연령대에는 대부분 좋아하는 노래가 비슷하고, 또한 계절에 따라 생각나는 노래가 달라집니다. 어느 날인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나의 노래인양 마음의 한 구석을 파고 들어왔습니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점점 멀어져간다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 노랫말이 가슴을 쿵쿵쳤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이야기가 가슴을 짠하게 만듭니다. 인생의 굽이굽이를 같이 보내며 가장 편한 친구로 있다 둘 중 한 명이 먼저 떠났을 때 과거의 기억들을 담은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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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이십년 혹은 삼십년 후, 아름다운 나의 늙음을 위해, 축배 !

토포하우스 대표 오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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