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같은 딜레마에 빠졌다.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시장금리가 떨어지지 않는데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번지고 있지만 긴축에 나서기 힘든 상황에 처한 것.
글로벌 경기에 회복 조짐이 선명해짐에 따라 해외 의존도가 높은 일본 경제에도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금리인상설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금융정책이 한계에 달한 일본은행으로서는 기준금리를 올려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고 있다.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일본은행 총재는 9일 교토에서 열린 국제금융회의(IMC) 강연에서 "현재 일본 경제는 최악의 시기를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전례 없는 금융위기의 한가운데에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이어 그는 "금융정책만으로는 금융·경제활동에서의 다양한 과잉 누적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정책과의 병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역할이 매우 약화됐음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가을 본격화한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부터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0.5%에서 0.3%로, 이어 0.1%로 순차적으로 인하해 현재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동시에 일본은행은 시중은행에 대해 보완당좌예금제도를 도입, 초과지급준비금에 대해 연 0.1%의 이자를 지급해 왔다.
하지만 기업들의 실적 악화에 따른 채무불이행을 우려한 은행들이 기업대출 기준을 대폭 강화하면서 시중은행 금리는 여전히 중앙은행의 금리 수준인 0.1%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금융기관에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려던 일본은행의 당초 취지가 바랜 것이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발표되는 경제지표에서는 잇따라 청신호가 켜지면서 회복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인하와 양적완화 정책을 중단하고 조기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번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 금융시장에서는 금리인상 전망이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일본 전국은행협회가 발표한 엔화 기준 티보금리는 3개월물이 전날보다 0.16% 낮은 0.57273%로 2007년 2월 21일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단기금융시장에서 재무성이 실시한 2개월물 국고단기증권(TB) 입찰은 최고 낙찰 수익률이 0.1642%로 지난 회 5월 19일 입찰 때의 0.1912%를 밑돌았다. 또한 일본은행이 유동성 공급 목적으로 실시한 기업어음(CP) 오퍼레이션은 최저 낙찰금리가 지난번과 같은 0.110%였다.
일본은행은 이날 보고서에서 "보완당좌예금제도 적용 금리가 기준금리 수준을 웃도는 상황에서 자금 공급을 강행하는 것은 시장 기능을 저하시킨다"며 더 이상의 금리인하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가 안정세로 돌아섰을 경우의 금리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일본은행은 "자산 가격 상승과 신용량 및 레버리지가 극대화된 상황에서 금리를 올려도 단발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극단적인 낙관주의와 과도한 비관주의 사이에서 일본은행의 갈등만 깊어지고 있는 셈이다.
시라카와 총재는 그럼에도 "금융정책 운영이 부적절하면 버블은 한층 더 팽창하다 결국 터져서 경제를 급격히 위축시킬 것"이라며 금융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배수경 기자 sue68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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