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는 생명유지장치에 의존 중인 환자" … 美·EU와 새로운 위상 정립해야
4일로 환갑을 맞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의 움직임이 과거보다 활발하다. 활동 영역은 넓어졌다.
1일 나토 사무국은 알바니아와 크로아티아가 회원국 가입에 필요한 절차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나토 회원국은 28개국으로 늘었다. 게다가 1966년 나토의 군사 체제에서 벗어났던 프랑스는 나토 복귀를 선언했다.
하지만 영국에서 발간되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했듯 나토는 몸집이 커졌지만 냉전 이후 정체성 위기로 표류하고 있다.
◆정체성 위기=나토는 미국과 유럽 사이에서 전략대화의 주요 창구 역을 담당했지만 이제 이도 옛말이다.
현재 진행형인 글로벌 경제위기는 주요 20개국(G20) 모임에서 다뤄진다. 이란의 핵 위협은 6개 핵강국이 취급한다. 러시아산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은 유럽연합(EU)에서 다루고 있다. 테러에 대한 정보는 쌍무관계를 통해 공유된다.
나토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군사작전이 나토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나토의 신뢰성과 정체성이 위기에 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나토는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양분돼 있다. 미국ㆍ캐나다ㆍ영국ㆍ네덜란드ㆍ폴란드가 탈레반 퇴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반면 나머지 회원국의 움직임은 미지근하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 과격파의 '지하드'(聖戰)를 나토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간주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옛 적(敵) 러시아를 더 경계하는 쪽도 있다.
지난해 발발한 러시아ㆍ그루지아 전쟁은 나토의 활동 영역과 관련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또 러시아에 어느 정도 비중을 둬야 하느냐는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몇몇 전문가는 미국이 그루지아 정예군을 훈련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훈련 목적은 재래전을 치르기 위함이 아니라 반정부군을 소탕하기 위함이다.
◆활동 영역=나토에 가입한 옛 사회주의 국가들은 자국 영토 수호를 더 중시한다. 이들 나라가 나토 회원국으로 가입한 것은 아프간에서 싸우기 위함이 아니라 러시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노르웨이의 에스펜 바르트 아이데 국방차관은 나토가 "우리 아들들을 아프간으로 끌고 가는 조직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나토가 역내 임무에 초점을 맞춘다면 역외 활동도 결국 지지 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3~4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와 독일 켈에서 나토 정상회의가 열린다. 이를 통해 채택될 이른바 '동맹안보선언'에서 영역 안팎의 임무에 대한 균형이 언급될 전망이다. 나토는 동맹안보선언을 토대로 좀더 상세한 '신(新) 전략 구상'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나토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과거보다 고조됐다는 보고를 접한 바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되레 나토의 강경 자세가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토는 불안에 떠는 회원국들을 진정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영국이 이른바 '연대군'(solidarity force)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연대군은 몇몇 나토 회원국의 소규모 병력으로 구성된다. 나토 연대군은 어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면 이를 돕는 신속대응군으로 기능한다. 다시 말해 다국적군으로 정치적 메시지만 전달토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러시아를 자극하는 일도 없으리라는 게 영국측 판단이다.
연대군 구성에 대한 승인이 떨어질 경우 현재 뒤죽박죽인 '나토신속대응군'(NRF)의 일선 부대를 구성할 수 있다. 병력 2만5000명으로 구성된 NRF는 언제든 동원이 가능하다지만 그런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영국은 연대군으로 역내 위기를 처리하고 NRF의 나머지 병력으로 아프간 주둔 병력 증강 같은 다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문제는 연대군이 구성될 경우 턱없이 모자란 자원이 분산돼 NRF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 국립 국방대학의 한스 비넨지크 교수는 "강력해야 할 NRF가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한 채 누워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 국방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4%에 이른다. 그러나 국방예산이 나토의 최소 기준인 GDP 대비 2%에 이르는 유럽국은 영국ㆍ프랑스ㆍ그리스ㆍ불가리아 뿐이다. 그 결과 2007년 미국은 전체 병력의 14%를 작전에 투입했지만 유럽 국가들은 겨우 4% 정도 동원할 수 있을 뿐이다.
◆나토와 EU의 라이벌 관계=나토와 EU의 관계도 문제다. 나토는 유럽에 안정을 가져와 유럽 통합이 쉽게 이뤄졌다. 옛 공산권 국가들은 나토를 발판 삼아 결국 EU로 통합됐다.
나토와 EU 모두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두고 있다. 회원국 대다수도 중복된다. 그러나 공식적인 협력은 없다.
최근까지만 해도 나토는 군사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한편 EU는 경제구성체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나토가 아프간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무력만으로는 반정부군을 제압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개발과 건설도 무력 못지않게 중요하다.
경기침체로 국방 및 대외 원조 예산이 줄 수밖에 없는 요즘 EU와 나토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EU의 두뇌집단인 유럽외교관계이사회(ECFR)는 보고서를 통해 "EU의 민간 참여가 없을 경우 아프간에서 미군이 증강돼봐야 별 효과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네 기관은 미국과 유럽이 추진해야 할 5대 전략을 공동으로 선정한 바 있다. ▲경제위기 극복 ▲국내 안보 확립 ▲이라크와 아프간의 안정화를 통한 글로벌 안보 위협 해소 및 대량 살상 무기 확산 금지 ▲유럽 전역의 민주주의 안정화 ▲살기 좋은 지구 보전이 바로 그것이다.
나토가 이를 모두 감당할 수는 없다. 보고서 작성자들은 "글로벌 문제 해결에서 나토가 꼭 필요하지만 나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나토가 '새로운 상호 협력 체제'에 합의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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