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으로 '나토 무용론' 이어져 … 지역안보에서 테러 대처, 핵무기 확산 금지로 눈 돌려
$pos="C";$title="";$txt="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나토 정상회의 하루 전인 2일(현지시간) 보안 강화에 나선 현지 경찰들이 나토 로고 앞을 지나고 있다. 급진좌파, 무정부주의자, 반전주의자로 구성된 시위대는 정상회담이 열리는 이틀 동안 반(反) 나토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사진=블룸버그뉴스).";$size="348,528,0";$no="2009040309570476826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가 4일 창설 60주년을 맞는다.
냉전의 산물인 나토는 유럽에서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설립됐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옛 소련 붕괴로 냉전이 종식된 후 존재 의미가 퇴색하면서 방향성 재정립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 현재 나토는 군사 동맹체에서 정치ㆍ외교 동맹체로 탈바꿈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일각에서는 나토를 두고 미국 외교ㆍ안보 정책의 들러리 조직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더욱이 요즘은 군사ㆍ외교ㆍ정치 역할을 놓고 유럽연합(EU)과 껄끄러운 갈등까지 빚고 있다.
◆냉전이 낳은 애물단지=나토는 1949년 4월 4일 미국ㆍ캐나다ㆍ영국ㆍ프랑스ㆍ이탈리아 등 12개국이 미국 워싱턴에서 북대서양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출범했다. 조약의 효력이 발생한 것은 1949년 8월 24일부터다.
이후 나토는 서유럽 반공국가들의 집단 방위조약으로 이어져왔다. 근본 목적은 소련과 바르샤바조약 동맹국이 서유럽으로 침공할 경우 군사적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맞서 소련과 소련의 위성국가인 불가리아ㆍ체코슬로바키아ㆍ동독ㆍ헝가리ㆍ폴란드ㆍ루마니아는 1955년 5월 14일 바르샤바조약을 체결했다.
나토군은 바르샤바조약 동맹군보다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나토군의 병기는 바르샤바조약 동맹군에 맞설 수 있을만큼 막강했다.
이런 대치 상황은 1980년대까지 계속됐다. 그러던 중 1980년대 말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광범위한 개혁으로 나토와 냉전시대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1989년 소련은 동유럽 공산주의 정부의 붕괴와 비공산주의 정부의 등장을 묵인했다. 소련이 이처럼 동유럽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면서 바르샤바 동맹군의 군사적 위협은 사라지게 됐다. 이후 일각에서 군사기구 나토를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흔들리는 위상=냉전 종식과 함께 1991년 바르샤바 조약 동맹 폐기로 체코ㆍ폴란드ㆍ헝가리 같은 몇몇 동유럽 국가는 안보 차원에서 나토 가입을 꾀했다. 나토 회원국 대다수는 이에 찬성했으나 러시아는 나토의 팽창정책이라며 강력히 반대했다.
옛 소련 붕괴 후 중유럽ㆍ동유럽에서 독립국가들이 속속 등장하는 과정에 국지적 분쟁 같은 위기가 잇따랐다. 이에 나토는 평화유지 활동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체코ㆍ폴란드ㆍ헝가리는 1999년 3월 이윽고 나토에 가입했다. 3국 외에 알바니아ㆍ불가리아ㆍ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ㆍ루마니아ㆍ슬로바키아ㆍ슬로베니아ㆍ마케도니아도 나토 가입을 희망했다.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ㆍ11 테러를 계기로 북대서양 안보에 비상이 걸렸다. 나토는 테러 위협에 대응하며 활동 영역을 서남아시아ㆍ중동ㆍ북아프리카 등지로 확대했다.
러시아도 나토를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2001년 러시아는 나토와 새로운 협력관계를 맺고 테러 대처, 핵무기 확산 금지, 무기 통제 같은 공동 관심사 해결에 나서기로 다짐했다.
나토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역할까지 전환했지만 '나토 무용론'은 계속되고 있다. 환갑에 이른 나토가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기 위해 고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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