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센터 한화 개관전 '큐비스트' 공개
피카소·브라크부터 김환기·유영국까지 112점
서구 모더니즘과 한국 근대미술의 접점 조명

여의도 63빌딩 옆 흰 전시장에는 파리 퐁피두센터의 알록달록한 배관도, 광장의 소란도 없었다. 검은 천장 아래 흰 벽이 길게 휘었고, 회색 바닥 위로 그림들이 조금씩 다른 각도로 걸려 있었다. 첫인상은 명작의 위세보다 시선의 불편함에 가까웠다. 피카소와 브라크의 얼굴은 한눈에 붙잡히지 않았고, 레제의 인물은 사람보다 기계에 가까웠다. 전시장은 작품을 보여주기보다, 보는 습관을 조금씩 어긋나게 했다.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_1전시실 전경. 퐁피두센터 한화_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_1전시실 전경. 퐁피두센터 한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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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센터 한화가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개관 기자간담회를 열고 첫 전시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을 공개했다. 일반 공개는 다음 달 4일부터 시작한다. 파리 퐁피두센터 소장품을 중심으로 1907년경부터 1920년대까지 이어진 큐비즘의 흐름을 조망한다.

피카소, 브라크, 페르낭 레제, 후안 그리스, 로베르 들로네 등 퐁피두 컬렉션 43명 작가의 작품 91점이 나왔다. 김환기, 유영국, 박래현, 이수억, 함대정 등 한국 근현대 작가 11명의 작품 21점도 함께 걸렸다. 모두 54명, 112점 규모다.


큐비즘은 익숙한 이름이지만 쉬운 그림은 아니다. 사물을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여러 방향에서 본 형태를 한 화면에 다시 조립했다. 원근법은 더 이상 세계를 정리하는 하나의 규칙이 아니었다. 얼굴은 평면으로 쪼개졌고, 악기는 몇 개의 선으로 남았고, 풍경은 기하학적 구조가 됐다. 큐비즘이 부순 것은 형태만이 아니었다. 하나의 눈으로 세계를 볼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로랑 르 봉 퐁피두센터 파리 이사장은 이날 서울을 하나의 '별'로 불렀다. 그는 "퐁피두센터가 이제 끝났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움직이고 있으며, 더욱 살아 있는 기관"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 곳곳의 거점을 잇는 '컨스텔레이션' 프로젝트를 언급하며 "서울에 문을 여는 퐁피두센터 한화가 가장 아름다운 별들 가운데 하나로 빛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_1전시실 전경. 퐁피두센터 한화_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_1전시실 전경. 퐁피두센터 한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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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축사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파리 퐁피두센터는 지금 리노베이션으로 본관의 시대를 잠시 접고 있다. 소장품은 세계 여러 지역으로 이동한다. 퐁피두센터 측은 각 지역에 보내는 작품이 단순히 '빌려줄 수 있는 작품' 목록에서 골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전시가 열리는 장소와 지역의 문화적 맥락, 전시 주제와의 연결성, 함께 놓이는 작품들과의 관계, 그 지역 관객에게 생길 의미가 작품 선정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큐비즘은 단순한 파리 컬렉션의 이동이 아니다. 질문의 이동이다. 큐비즘이 하나의 시선과 하나의 중심을 의심했던 미술이라면, 서울의 퐁피두 역시 파리라는 중심 하나로 설명되던 미술관의 시대를 되묻는다. 서울은 퐁피두의 수신지인가, 아니면 새로운 좌표인가.

물론 개관전으로 큐비즘을 택한 것은 안전한 선택이기도 하다. 피카소와 브라크, 레제의 이름은 강하다. 강한 이름은 관객을 부르지만, 전시를 교과서처럼 만들 위험도 있다. 실제 전시는 9개 섹션을 따라 큐비즘의 탄생과 확산, 전쟁 이후의 변형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준다. 퐁피두센터 관계자는 이 구성이 의도된 선택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주요 작품이 적지 않은 만큼, 미술사적 맥락 안에서 큐비즘의 이야기를 이해하도록 한 구성이라는 설명이다.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프리뷰투어. 퐁피두센터 한화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프리뷰투어. 퐁피두센터 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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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절함은 장점이자 한계다. 길을 잃지는 않는다. 대신 큐비즘이 처음 던졌던 충격, 세계를 보는 방식이 무너지는 감각은 조금 얌전해진다. 그래서 전시의 힘은 설명보다 작품 사이의 간격에서 나온다. 피카소의 분석적 화면 앞에서 멈추고, 들로네의 색채를 지나, 레제의 기계적 인물과 마주하는 동안 관객은 큐비즘을 배우기보다 조금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가장 중요한 장면은 제2전시실 메자닌의 'KOREA FOCUS: 모던 아방가르드를 향한 꿈의 지도'다. 이 섹션은 김환기와 유영국, 박래현 등의 작업을 통해 큐비즘 이후의 시각이 한국 근현대미술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변주됐는지를 보여준다. 관건은 '영향'이라는 말의 방향이다. 파리에서 시작된 큐비즘이 한국에 도착했다는 식으로 읽히면, 한국 미술은 또다시 서구 모더니즘의 주석이 된다. 그러나 전시장 안의 한국 작가들은 단순한 후행 사례로만 보이지 않는다. 식민지 근대와 해방, 전쟁 이후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조형 언어를 고른 작가들의 선택이 보인다.


피카소 옆에 김환기를 놓는 일은 쉽다. 어려운 것은 그 배치가 '서구의 원본과 한국의 반응'이라는 낡은 도식으로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일이다. 퐁피두센터 한화가 서울에서 해야 할 일도 거기에 있다. 퐁피두라는 이름은 이미 충분히 크다. 관건은 그 이름이 한국 미술을 더 작게 만들지, 다른 문장 안에서 다시 읽게 만들지다.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_2전시실 전경. 퐁피두센터 한화_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_2전시실 전경. 퐁피두센터 한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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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전은 미술관의 첫 문장이다. 첫 문장은 모든 것을 말하지 못한다. 다만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낼지는 보여준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가장 익숙한 서구 모더니즘의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큐비즘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계는 하나의 눈으로 볼 수 있는가. 미술관은 하나의 중심에서만 말할 수 있는가. 한국 미술은 언제까지 파리의 뒤쪽에 놓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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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피카소의 이름만은 아니었다. 곡면을 따라 걸으며 조금씩 어긋나는 시선, 프랑스어 축사와 한국어 통역 사이의 시간차, 휴대전화 화면 속으로 다시 잘려 들어가는 그림들이었다. 큐비즘은 한 세기 전 보는 방식을 깨뜨렸다. 서울의 퐁피두가 이제 증명해야 할 것은 그 다음이다. 깨진 시선을 이 도시 안에서 어떻게 다시 조립할 것인가. 전시는 10월 4일까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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