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년 만에 되살아난 안중근 의사 유리건판…의거 직후 생생한 모습
국사편찬위, 고해상 디지털 자료 공개
동지 우덕순·조도선·유동하 사진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직후 촬영된 유리건판 사진이 116년 만에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국사편찬위원회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 직후 러시아와 일본 당국이 촬영한 안중근 의사와 동지들의 유리건판 사진을 고해상 디지털 자료로 공개한다고 23일 밝혔다.
유리건판은 조선총독부가 원본 사진을 복제해 만든 것으로, 일반 필름보다 해상도가 높고 내구성이 뛰어나 1940년대까지 중요 자료 보존에 사용됐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1970년대 '한국독립운동사:자료' 등에 인쇄물로 실렸으나 화질이 낮아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안 의사의 사진은 세 장이다. 한 장은 러시아 관헌에게 체포된 직후인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에서 오후 10시 10분 사이 러시아 동청철도 철도헌병관리국 조사실에서 촬영됐다. 안 의사는 포박당하지 않은 채 당당히 서 있다.
나머지 두 장은 10월 27일 오전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에서 찍혔다. 신병이 러시아에서 일본으로 인계된 뒤로, 포승줄에 묶인 안 의사는 표정이 다소 굳어 있다.
일제는 이 사진들을 11월 9일 통감부로 보내고 복제해 안중근의 동지들을 체포하는 데 활용했다. 1909년 11월 12일 대한매일신보는 '사진 도착'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안 의사의 인상착의를 전하며 "각처 경찰서에 두고 그 연루자를 조사하는 데 쓰게 한다"고 보도했다.
이번에 공개한 자료에는 안 의사와 뜻을 같이한 동지들의 모습도 담겼다. 차이지아거우 역에서 이토를 처단하려 했던 우덕순과 조도선, 하얼빈에서 거사 연락을 맡았던 유동하 등이다.
이들은 러시아 관헌에 체포됐다가 10월 31일 일본 측에 인계됐다. 사진은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찍혔다고 추정된다. 하얼빈 한인들이 설립한 동흥학교의 교사였던 탁공규, 일본 관헌이 '밀정'이라고 기록한 이진옥 등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각 사진과 함께 촬영 시점, 장소, 인물 정보, 기존 역사적 오해나 오류를 바로잡는 내용을 담은 해제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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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현 국사편찬위원장은 "안중근 의사와 동지들의 뜻을 되새기고,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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