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

대법원이 국문과 영문이 병기된 공급계약서에서 분쟁 해결 조항의 내용이 일부 불일치하더라도, 조항의 전반적 맥락상 당사자들이 중재를 통한 분쟁 해결에 합의했다고 볼 수 있다면 유효한 전속적 중재합의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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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에선 중재 친화적인 관점에서 중재합의의 유효성을 폭넓게 인정해 오던 대법원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월 23일 외국 회사와 국내 회사 사이의 공급계약 분쟁 상고심(2024다243172)에서 "본건 관할조항은 전속적 중재합의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사실 관계]


국내 기업 A 사는 독일계 회사와 강관 스레딩 설비 2기를 280만 유로에 공급받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에는 국문과 영문이 병기됐는데, 국문에는 "한국법률이나 국제사법재판중재위원회의 통제를 받는다"라고, 영문에는 "모든 분쟁은 한국법 또는 상사중재위원회에 따라 최종 해결한다"라는 취지로 기재돼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A 사는 B 사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고, 물품대금 252만 유로 상당의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B 사는 "계약상 전속적 중재합의가 존재하므로 법원 소송은 부적법하다"고 항변했다.


"국문-영문 중재 조항 달라도 상호 합의 있다면 소송 안 돼" 원본보기 아이콘


[하급심]

1심은 B 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전속적 중재합의가 인정된다며 소를 각하했다. 반면 항소심은 "영문과 국문을 대등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한국 법률의 통제'를 '한국 법원에 의한 재판'까지 수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or(또는)'라는 접속사가 이를 중재와 병렬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소송과 중재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조항에 불과하다"며 B 사의 주장을 배척했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은 전속적 중재합의가 인정된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A 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계약서에 중재 조항을 별도로 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계약서에 중재에 관한 조항을 별도로 둔 사정은 분쟁을 중재에 의해 해결하겠다는 당사자들의 의사를 추단하는 유력한 자료가 될 수 있다"며 "중재조항의 일부 문언이 모호하고 상충되거나, 존재하지 않는 중재기관이나 중재인을 지정하는 등 중재조항에 다소간의 흠결이 있다고 해 그러한 사정만으로 유효한 중재합의가 아니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본건 관할조항의 영문 표제가 'Arbitration(중재)'이고, 국문과 영문 모두 '중재기관에 의한 통제'를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당사자가 분쟁을 중재절차로 해결할 의사를 명시한 것"이라고 보았다.


아울러 "'한국 법률의 통제(by Korean Law)'라는 표현은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의 소송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준거법을 지정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 사건 조항이 유효한 중재조항이라고 판단했다.


[소송대리인 의견]

이철원(52·사법연수원 28기)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1심에서 본안 판단은 뒤로 미루고 관할 문제만을 우선 심리한 덕분에 대법원까지 비교적 신속하게 결론이 나온 점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재 조항의 관할 문제를 피고가 제기하면 어떤 법원은 관할 여부를 먼저 심리해 곧바로 결정을 내리지만, 또 어떤 법원은 본안과 함께 심리하다가 뒤늦게 관할이 없다고 판단하기도 한다"며 "그렇게 되면 본안을 몇 년 동안 다투고도 결국 관할 없다는 결론만 나 시간과 비용이 낭비되고, 소멸시효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앞으로는 상대방이 중재 항변을 제기하면 실체관계를 함께 판단하기보다는 관할부터 심리해 조기에 확정함으로써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 낭비를 줄이는 관행이 자리잡길 기대한다"며 "아울러 중재와 소송이 경합하는 경우에는 제소금지 가처분을 하나의 해결책으로 검토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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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명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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