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집회의 자유'도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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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은 혼돈 그 자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지지자들은 헌재 앞에서 필리버스터 형식의 기자회견을 이어가고 있고, 정문 인근에는 단식 농성자들의 천막이 길게 늘어서 있다. 선고가 임박한 최근에는 여야 의원들의 기자회견도 매일 열리다시피 한다. 집회 참가자들은 확성기를 든 채 "헌법재판소는 회개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부부젤라와 호루라기를 불어댄다. 고성과 욕설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이로 인해 인근 상인들은 물론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불편함과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다. "잠자리에 누우면 시위 현장에서 들은 욕설과 호루라기 소리가 귀에서 웽웽거린다"는 상인도 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공간 가운데 하나다. 그런 헌재 앞에서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보장돼야 할 권리이기도 하다. 다양한 목소리와 구호, 때론 고성과 호루라기 소리까지 뒤섞이는 의견 표출의 현장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가 실현되는 살아있는 현장일 수 있다.

거리의 목소리가 우리 역사를 바꿔 온 일은 많다. 멀게는 4·19가 있었고, 1980년 광주, 1987년 6월이 그랬다. 집회의 자유는 민주 사회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가치인 것이다. 헌재 앞 집회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고, 자신의 신념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점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 방식에 있어서는 이제 차분히 생각해 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헌재 앞 시위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헌재 인근 주민들은 확성기 소리에 일상 대화조차 힘들고, 격한 구호와 욕설 때문에 부모와 함께 지나가는 아이들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후배 기자가 헌재 앞에서 대만 관광객 첸촨탕씨(26)는 "무슨 시위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시끄럽고 정신없다"고 말했다.

25일 오후 서울로 들어오는 남태령 고개에서 벌어진 일들도 불편한 대목이 많다. 효과적인 의사 전달 방식을 고민했을 ‘트랙터 시위대’의 뜻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로 인한 혼란으로 피해를 보고 불편을 겪는 이들 역시 우리 이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배달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일 수 있고, 운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집회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공포가 되고, 누군가의 생활에 큰 불편을 끼치고,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직접적으로 침해한다면 다른 얘기가 된다. 사회는 서로 다른 가치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다. 내 자유가 존중받으려면 다른 사람의 자유를 먼저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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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헌재가 내리게 될 결론은 우리 민주주의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벌써부터 ‘헌재 결정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찬성하지 않는 쪽에서는 쉽사리 승복하지 않을 것이며, 이로 인해 ‘내전(內戰)’이 벌어질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 모두가 민주 사회에 걸맞은 의견 표출 방식을 고민하고 집회와 시위 문화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 이유다. 지금 이 순간 ‘집회의 자유’도 시험대에 올라 있다.


유병돈 사회부 사건팀장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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