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밈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 기획전
정정엽·정직성·김들내·노경희·이지영 참여
"예술은 반복적 노동과 헌신을 통해 탄생"
갤러리밈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특별한 기획전을 선보인다. 3월 14일까지 열리는 'Labor of Love'전은 정정엽, 정직성, 김들내, 노경희, 이지영 등 한국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40~60대 작가 5인의 노동집약적 작업 과정을 조명한다.
'Labor of Love'는 아무런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수고를 이르는 관용구다. 이번 전시는 노동집약적 작업을 묵묵히 이어온 작가들의 예술적 헌신을 살펴본다. 물리적인 긴 시간과 반복 동작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 불안과 강박, 세상으로부터의 자발적 소외를 감내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온 이들의 이야기가 전시의 중심을 이룬다.
여성주의 미술의 대표작가 정정엽은 붉은팥알갱이들로 거대한 집적을 이루는 작품을 선보였다. 하찮고 무수한 콩, 팥들은 캔버스 위에서 단단한 생명력으로 황량한 벌판을 채우거나 광막한 밤하늘을 밝히는 빛이 되었다. "이 더디고 오랜 작업은 생명이 살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작가의 말은 '늘 존재해왔으나 쉽게 보이지 않는' 여성 노동의 가치를 작품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천년 전통의 나전칠기 기법으로 현대자개회화를 선보이는 정직성은 이번 작업으로 목디스크를 얻었다고 한다. 칠흑의 옻칠과 대비되는 오색 빛 자개의 물성으로 바람과 기계의 역동성을 추상의 언어로 표현했다. 작가는 때로 이 고된 과정이 헛되게 느껴지면서도, 마음을 새기는 노동으로 타인과 깊이 공명할 수 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았다.
노경희의 숲 풍경은 극도의 정밀함이 돋보인다. 캔버스 끝자락의 작은 풀잎 하나까지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환영을 불러일으킨다. 찰나와 영원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순간을 포착한 생생함은 노동의 결실이자,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엿보게 한다.
하트를 주요 소재로 다루는 김들내는 의외로 허무의 의미를 새겨 넣는 데 공을 들였다. 초콜릿의 달콤함과 진주의 영롱함으로 대변되는 화려함은 결국 녹아내리거나 퇴색되는 허망한 것들이다. 강렬한 욕망의 에너지는 아름다움과 허무함의 대비를 통해 처연하면서도 슬픈 낭만을 담아냈다.
이지영은 세상에서 가장 단출한 도구인 연필로 무한한 선을 긋고 겹치는 작업을 고수했다. 흑연의 흔적으로 존재의 미세한 떨림부터 심연의 깊이까지를 포착한 그는, 섬약한 야생화 무리와 그들과 이웃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수 놓듯 채워 존재의 떨림과 깊이를 포착한다. 검은 선들은 때로는 신비로운 꽃밭이 되고, 때로는 어둠 속 망망대해가 되면서 단순한 재료로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전시를 기획한 김현진 큐레이터는 "정성과 수고로움으로 채워진 캔버스를 마주하는 일은 경이롭다"며 "작가들마다 각기 다른 호흡과 결로 숙련된 손끝으로 긴 시간을 경작해가는 고단함의 리듬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전시가 예술가를 천재적 영감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존재로만 바라보는 편견을 깨는 데 의의를 둔다고 강조했다. "예술은 불멸의 영감이 아니라, 반복적 노동과 헌신을 통해 탄생한다"고 덧붙였다.
김 큐레이터는 "예술이란, 작품 속에 쌓여있는 시간과 노동의 헌신이 그 헛됨과 무용함으로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된다"며 "자신과 세상을 향한 불안이 예술가의 본질인 까닭에 인간과 세계라는 두 존재의 경계를 끊임없이 서성이며 탐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시는 예술이라는 특별한 형태의 노동이 지닌 의미, 그리고 삶의 본질적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헛된 행위의 끝없는 반복 속에서도 예술은 탄생하고, 그 안에 담긴 헌신과 시간은 관객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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