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형법에 경영 판단의 원칙 명시 검토"
정부 "F4에서 논의 뒤 확정 예정"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부과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상법개정 방향에 재계가 9년 만에 한목소리로 강하게 반발했다. 재계 반발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본인이 직접 참여하는 형태의 공개 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재계 입장을 고려해 ‘노력 의무’를 상법에 반영하는 방안 등을 최종 논의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상법보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에 힘을 쏟고 있다.
이 대표는 22일 상법과 관련해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 이 대표는 "일방적으로 다툴 게 아니라 국민이 보는 가운데 공개 토론을 통해 누구 주장이 옳은지, 쌍방 주장을 통합해 합리적 결론에 이를 수 있는지 토론해볼 필요가 있다"며 "제가 직접 토론에 참여해보고, 정책위의장을 통해 쌍방의 입장을 취합해 본 뒤 민주당 입장을 확실히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소액투자자 보호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며 "다만 그 방법에 어떤 길이 있는지 이론이 있으니 합리적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기업과 투자자 입장에서도 신속하게 공개토론에 응해달라"라고 했다.
민주당에서는 재계 반발을 의식해 절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날 "재계에서 상법 개정 시 배임죄 등을 우려하고 있어 배임죄 폐기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데, 최소한 구성 요건 차원에서 경영 판단의 원칙을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 부분은 형법 개정에서 다뤄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영 판단의 원칙은 이사가 회사의 선량한 관리자로서 합리적 근거에 따라 한 경영 판단에 대해서는 손해가 발생해도 법적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는 법률적 판단 기준이다. 재계의 불안을 덜겠다는 것이다. 상법 개정 논의를 맡아온 민주당 내 '대한민국 자본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는 다음 주 재계를 만나 민주당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에 관해 설명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현재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이사회가 일반주주를 포함한 전체 주주가 아니라 경영진 입맛에 맞는 의사결정을 내려도 이사들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경영진을 위한 의사결정을 해도 ‘회사’를 위해 충실히 직무를 수행했다고 법원이 해석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의 인수합병(M&A)과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등의 사례처럼 소액주주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의사 결정은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되는 이유로 꼽히며 제도 개선 방안이 논의돼왔다. 민주당은 한술 더 떠서 충실 의무 확대를 넘어 이사회의 의무에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의무까지 담았다.
정부는 이날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핵심 경제 당국자 모임)에서 '노력 의무’를 담는 안 등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뒤 확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정부안은 앞서 관계 부처가 합의해 마련했으나 공식 안으로 확정 발표하지는 않았다. 정치권이나 법조계 등에서는 노력 의무에 대해 충실 의무 확대에서 후퇴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한다. 노력은 수치화하기 어려운 요소로 기업이 일반 주주의 이해관계를 고려한 점을 포괄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는 재계 반발을 고려해 중간 지점으로 노력 의무를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는 이사의 충실 의무가 확대되면 소송 남발 등으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자본시장법 등을 보완해 주주들 이익 보호의 균형을 맞출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상법 개정보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에 힘을 쏟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21일 "주주를 충실 의무 대상으로 넣으면 매우 많은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법 개정 모두 양방향으로 검토 중"이라면서도 "상법 개정은 상장사와 비상장사를 가리지 않고 적용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의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을 발의하는 등 핀셋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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