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밈, '서용선의 단종 그림_한과 충의 노래: 단종과 김시습'
역사보다 오래 남는 표정과 기억의 흔적
김시습까지 불러내 비극의 증인과 기억을 묻다
작가의 단종 역사화 40주년 합동展, 서울과 영월 등 다섯 곳에서

붉은색은 원래 좋은 일에 쓰는 색이다. 잔칫날 병풍에도 남고, 아이 돌복에도 남고, 궁궐의 의장에도 남는다. 그런데 서용선이 그린 단종의 붉은 옷은 좀 다르다. 경사보다 상처에 가깝다. 기쁜 날 걸치는 색이 아니라, 너무 일찍 몸에 얹힌 비극의 색처럼 보인다.

단종, 매월당_2010_Oil on cavas_175x143cm. 갤러리밈

단종, 매월당_2010_Oil on cavas_175x143cm. 갤러리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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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는 그 붉은색이 먼저 걸린다. 그다음에야 얼굴이 들어온다. 얼굴들은 편안하지 않다. 눈은 다 감기지 않았는데 이미 먼 데를 보고 있고, 코와 뺨은 반듯하게 놓이지 않은 채 꺾여 있다. 검은 선은 대상을 또렷이 세우기보다 자꾸 흔든다. 서 있는 인물들인데, 보는 쪽에서는 버티고 있다는 느낌을 먼저 받는다. 왕의 초상이라기보다 어떤 운명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사람의 얼굴에 가깝다.


단종은 한국사에서 자주 불려나온 이름이다. 비운의 임금이라는 몇 마디 말로도 대강 설명이 된다. 그런데 그런 설명은 늘 너무 빨리 끝난다. 서용선의 그림은 바로 그 빨리 끝나는 설명을 믿지 않는 쪽에 서 있다. 그는 사건을 정리하지 않고, 남은 표정을 붙든다. 폐위와 유배, 죽음 같은 큰말보다 그 일을 지나온 얼굴의 결을 오래 본다. 역사를 서술하기보다, 그 역사가 한 인간의 몸에 어떻게 남았는지를 되묻는 셈이다.

이를테면 어린 단종을 중심에 둔 그림에서는 앞뒤의 인물들보다 손이 먼저 보인다. 누군가는 어깨를 짚고, 누군가는 곁에 붙어 서 있다. 보호하는 손처럼도 보이고, 빠져나갈 수 없게 하는 손처럼도 보인다. 권력은 늘 멀리 있는 줄 알지만, 실은 그렇게 몸 가까이 와 닿는다. 말보다 손이 먼저 아는 것이다. 그 그림은 그 단순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보여준다.

경주 남산_2006, Pen on lined paper, 23x15 cm. 갤러리밈

경주 남산_2006, Pen on lined paper, 23x15 cm. 갤러리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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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으로 가면 이야기는 더 헐거워지고, 대신 더 아프다. 얼굴 하나가 먹빛으로 대강 뭉개져 있는데도 이상하게 또렷하다. 잘 그려서 또렷한 것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아서 또렷한 얼굴이다. 설명이 적을수록 더 오래 남는 표정이 있다. 서용선의 단종이 그런 표정이다. 완성된 초상보다, 끝내 지워지지 않은 흔적에 더 가깝다.


공책에 휘갈긴 청령포 스케치도 눈에 남는다. 정자와 언덕, 꽃 몇 송이, 급히 지나간 선들. 잘 그린 풍경이라기보다 놓치기 전에 붙잡아둔 기억 같다. 기념비를 세우려는 손이 아니라 메모를 남기려는 손이 보인다. 생각해보면 역사는 늘 그런 식으로 남기도 한다. 거창한 문장보다 어설픈 낙서, 정리된 기록보다 급히 받아 적은 흔적에 더 오래 남는 마음이 있다.

전시에서 김시습이 함께 불려나오는 것도 그래서 자연스럽다. 단종만 있으면 이야기는 어린 임금의 비애에서 끝나기 쉽다. 김시습이 들어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비극은 죽은 자에게서만 끝나지 않고, 그것을 본 자의 생애로 이어진다. 충이라는 말은 오래된 교과서 속에 갇혀 있지만, 실제의 충은 아마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잊고 살면 편했을 일을 잊지 못하는 마음.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 끝났을 일을 끝내 정리하지 못하는 성정. 단종이 상실의 얼굴이라면, 김시습은 그 상실을 붙잡고 살아야 했던 사람의 얼굴이다.

경주 남산_2006, Pen on lined paper, 23x15 cm. 갤러리밈

경주 남산_2006, Pen on lined paper, 23x15 cm. 갤러리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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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역사화가 오래 붙드는 것도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큰 이름으로 박제된 영웅보다, 그 사건의 가장자리에서 밀려난 사람들. 기록 바깥으로 밀린 표정들. 그의 그림에서는 중심과 주변이 자꾸 자리를 바꾼다. 왕을 그리는데도 왕관보다 얼굴이 남고, 사건을 그리는데도 줄거리보다 기색이 남는다. 역사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중에 남는 것은 연도와 사건명이 아니라, 그때 누가 어떤 표정으로 서 있었는가 하는 것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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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러 공간과 영월로 흩어 놓은 전시 방식도 묘하게 어울린다. 단종의 삶도 한곳에 머물지 못했다. 궁궐에서 유배지로, 왕의 자리에서 폐주의 자리로 밀려났다. 김시습 역시 정착보다 방랑 쪽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러니 이 전시는 한 공간 안에서 가지런히 정리될 때보다, 조금 흩어져 있을 때 더 제 모습 같기도 하다. 어떤 삶은 한 전시장에 넣어두기보다 몇 군데에 나누어 두는 편이 더 잘 읽힌다.

노산군-청령포_1993_Oil on canvas_130x110cm. 갤러리밈

노산군-청령포_1993_Oil on canvas_130x110cm. 갤러리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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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고 나오면 단종은 더 이상 교과서 속 어린 임금으로 남지 않는다. 붉은 옷 한 벌, 검은 선 몇 가닥, 자꾸 흔들리는 얼굴 하나로 남는다. 김시습도 충신의 이름보다는 끝내 잊지 못한 사람의 이름에 가까워진다. 역사는 대개 큰 사건으로 배운다. 하지만 사람 안에 오래 남는 것은 대개 그런 큰말이 아니다.

어깨 위의 손 하나, 다 지워지지 않은 얼굴 하나, 공책 위를 급히 지나간 선 몇 개 같은 것이다. 서용선은 오래 그 작은 것들을 붙들어온 듯하다. 봄 전시장에 걸린 단종 그림 앞에서는, 지나간 비극이 아직도 완전히 과거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잠깐 든다. 그런 생각은 요즘 드물다. 전시는 5월 29일까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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