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부를까…쓰다듬지도 말라’
보육교사 “CCTV, 교육활동 규제”
# 4년 차 어린이집 교사 김모씨(30)는 어린이집에 설치된 CCTV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가 하원한 뒤부터 몸이 아프다며 무턱대고 CCTV부터 보여달라는 학부모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어린이집에서의 일과를 상세하게 설명했지만, 해당 학부모는 아무 말도 믿지 못하겠다면서 경찰까지 데려왔다.
결국 CCTV 영상까지 확인한 후에야 학부모는 사과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미 김씨는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돼버린 상태였다. 김씨는 어린이집 CCTV 설치에 대해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 내내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된다”면서 “아동학대로 의심받을 수 있으니 아이 머리를 쓰다듬지 말라는 지침도 받았다”라고 토로했다.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가 시행된 지 10년 차에 접어든 가운데 CCTV 열람 과정에서 많은 어린이집 교사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열린유아교육학회에 게재된 논문 ‘CCTV 설치 유무에 따른 어린이집 교사 인식 차이와 직무스트레스 차이’에서 CCTV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CCTV가 설치된 어린이집 교사들의 응답을 살펴보면 CCTV를 교육활동의 규제로 인식한다는 문항의 평균이 5점 만점 중 3.54로 집계됐다.
이는 CCTV가 설치되지 않은 어린이집에서 재직 중인 교사들의 답변(3.29)보다 높은 수준이다. 또한 어린이집에 CCTV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는 답변은 2.74로 다소 낮은 편이었으며, CCTV가 미설치된 곳에 대한 근무 선호도는 3.37로 비교적 높게 분석됐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교육 현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서울 송파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 한모씨(56)는 “웬만하면 교사와 학부모 사이가 틀어지지 않도록 가운데서 대화로 오해를 풀기 위해 애쓰지만, 학부모님들이 CCTV부터 보자고 따지시면 정말 곤란하다”며 “그 과정에서 교사들은 자신감, 자존감도 떨어지고 아예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할 정도로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6년 차 교사 이모씨(29)도 “아이들을 훈육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면 아이가 도망가거나 장난을 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럴 때 팔이나 몸의 일부를 잡고 이야기하는데 이게 자칫 나중에 CCTV 영상에서 아동학대로 비춰질까 무섭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CCTV 설치가 의무화된 만큼 교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영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명예교수는 “보통 학부모님들의 감정이 격해진 상태이다 보니 CCTV 열람 요청 과정에서 교사를 함부로 대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런 경우 열심히 일하던 교사들이 현장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CCTV 열람 과정에서 교사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혜경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민간분과위원회 부위원장도 “어린이집 CCTV는 분명 순기능이 있으나 영상을 확인하고 수사와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교사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사건을 함께 들여다봐 주는 객관적인 중재 기구가 설치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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