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두둔하는 행정 조정안 받아들일 수 없다"
예치금 옮기는 '뱅크런' 보이기도
금융당국이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사태 관련 분쟁 조정기준안을 내놓은 가운데 해당 상품에 가입한 이들이 “배상안을 철회하고 계약 무효와 원금 배상을 공식화해달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NH농협은행 예치금을 뽑아 타행으로 옮기는 행위인 ‘뱅크런’을 선보이기도 했다.
15일 정오 서울 서대문구 농협중앙회 본점에서 열린 ‘대국민 금융사기 계약 원천 무효’ 집회에서 길성주 홍콩 ELS 피해자 모임 위원장은 “사기 가해자를 두둔하는 파렴치하고 치졸한 행정 조정안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은행은 원금을 전액 보상할 뿐 아니라 손실도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 위원장은 “(ELS 투자 경험, 금융상품 이해 능력 등에 따라 배상비율을 조정한 기준안은) 피해자를 갈라치기하며 현 사태의 본질을 심하게 왜곡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입자들이 피해 사례를 나누기도 했다. 70대 노모를 대신해 단상에 오른 A씨는 “아버지 산재보험금까지 포함된 노후자금, 이 피 같은 돈을 초고위험상품인 ELS에 가입해 운용하도록 한 건 명백한 적합성 원칙 위반”이라며 “‘나라 망하지 않는 한 손실날 일 없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가입했는데 이는 보이스피싱과 다를 바 없는 명백한 대국민 사기행각”이라고 호소했다.
부산에서 꼭두새벽부터 출발했다는 B씨는 “30년 거래한 은행이 안전하다고 해서 의심 없이 믿고 싸인한 게 잘못이냐”며 “앞으로 은행을 믿고 저금할 수 있도록 원금만이라도 돌려주시길 간절히 호소한다”고 절규했다.
소송전을 예고한 가입자도 있었다. 자책하고 있는 아내를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는 C씨는 “5년까지, 대법원까지 가는 법적 투쟁이라도 벌여 5년 후에는 손실액 1억원을 아내에게 주겠다”며 “5년간 고통에 대한 보상도 받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집회에선 피해자 결의의 행동인 ‘뱅크런’도 있었다. 농협은행에서 번호표를 뽑은 뒤 예치한 예금을 뽑아 타행으로 옮기는 행위다. 주최 측에 따르면 50여명이 참여했다. 이 행위에 함께 한 D씨는 “오늘은 우선 2000만원을 뽑고 적금 만기 돌아오는 대로 보유 중인 2억원 모두 뽑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주최 측과 경찰·농협은행 측 사이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안전상 문제로 15명씩 차례로 입장하면서 남은 참가자들이 10여분간 야외에서 대기해야 했다. 입구에는 경찰과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성들이 자리했다. 이에 대기줄에서 “추운데 고객을 세워 놓냐”, “사기칠 땐 문 활짝 열어놓고”, “18원만 남기고 다 뽑을 거다” 등으로 불만이 터져나왔다. 길 위원장도 “무슨 근거로 누구의 지시에 의해서 이렇게 나와 있는지 묻고 싶다”며 분노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나중엔 추가로 열어서 최종적으로 50명 넘게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한편 피해자 모임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은행연합회 이사회가 간담회를 갖는 18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 앞에서 깜짝 기자회견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29일에는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집회를 연다고 말했다.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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