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단체장은 중소기업 CEO처럼 일해야"
상품권 예산 삭감 정부, 주민 요구에 역행
"속도감 있는 재개발·재건축 계속 지원할 것"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9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역사랑상품권이 산업기반이 취약한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정부와 서울시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제공=성북구청)
이승로 서울 성북구청장의 제2의 고향은 성북구다. 고향을 떠나 20대 초반 정착한 곳이 석관동이고, 올해로 40년째 같은 동네 주민으로 산다. 노량진 수산시장 노무자로 시작해 한때 식자재 유통업으로 성공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다 지역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
성북구 사정을 잘 아는 ‘현장형 구청장’이라 불리는 건 그의 이런 배경 때문인지 모른다. 한밤중 큰 눈이 오면 새벽 2, 3시에 집 밖을 나가 제설작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살핀다. 지난 일요일 정릉동 다세대주택 야외주차장 화재 땐 아들 내외와 외식하러 나섰다가 차를 돌렸다. 이 구청장은 “기초자치단체장은 중소기업 CEO가 경영하듯 발로 뛰며 일해야 한다”며 “특히 지역 주민의 재산권과 안전은 단체장이 앞장서서 챙겨야 한다”고 했다.
구청장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지난 9일 오후 서울 전역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눈발이 계속 굵어지자 이 구청장은 다음 날 있을 신년 인사회 개최 여부를 두고도 고민했다. “눈이 많이 오면 이동하는 게 위험하기도 하고, 안전 등 동네에 챙겨야 할 일도 많다”며 “현장에 나가보고 판단해야겠다”고 했다. 자치구 신년 인사회는 1000명 이상이 참석하는 큰 행사다.
인터뷰 동안 이 구청장이 강조한 건 주민 안전과 지역경제 문제였다. 지역사랑상품권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속도감 있는 재개발·재건축 사업 추진 모두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승로 구청장과의 일문일답.
-지역사랑상품권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그렇게 큰가.
▲코로나19 감염이 심각했던 2020년 장위동 일대 상권이 쑥대밭이 된 적이 있다. 당시 사랑제일교회발(發) 집단 감염으로 교회 인근이 기피 지역이 되면서 장위 전통시장 등 인근지역 점포에 몇 달 동안 손님 발길이 끊겼다. 폐업하는 점포가 속출하자 아이디어를 내서 장위동 일대에서만 쓸 수 있는 할인율 높은 상품권을 발행했고,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성북구에는 패션 봉제산업이 발달한 것 외에 이렇다 할 산업이 없고 소상공인이 많다. 지역사랑상품권이 지역경제 활성화에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많이 발행하면 되지 않나.
▲상품권에 대한 소상공인과 주민들의 수요는 폭발적이지만 국·시비 지원금은 발행 첫해 이후 계속 축소되고 있다. 지난해 정부예산은 전액 삭감됐고, 시 예산 지원은 6%에서 4%로 줄었다. 구비 부담이 계속 늘어나니 할인율이 10%에서 7%로 줄 수밖에 없었다.
정부에서는 이걸 현금복지라면서 예산을 줄여버리는데 이게 무슨 현금복지인가.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축소는 주민들 필요와 정부 시책이 역행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다른 구청장들에게 동의를 구해보니 이념과 진영을 떠나 서울 25개 구청 모두가 같은 뜻이었다. 구청장 회의 때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두 번이나 건의했다. 구청장협의회를 통해 서울시에 할인율 확대와 할인보전금 증대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효과가 있나.
▲지역에서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수요가 특정 장소로 몰리는 광역상품권과 달리 혜택이 지역 상인에게 골고루 돌아간다. 상인들을 만나면 ‘성북사랑상품권을 발행하면 매출이 눈에 띄게 오른다’고 하고, 주민들은 ‘사교육 때문에 허리가 휠 정도인데 상품권으로 수강료를 절감할 수 있어 좋다’면서 ‘앞으로도 많이 발행해달라’고 신신당부한다.
성북구는 작년에 두 달에 한 번씩 61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구비로 발행한 금액이 420억원으로 서울시 자치구 중 세 번째로 많다. 발행 때마다 금방 동나고, 8개월 이내 사용률이 100% 정도로 회전이 잘 된다. 예산 여건이 어렵지만 올해도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행할 것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124개 구역의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이 진행 중이다.
▲재정 규모가 작은 기초지자체는 주민들이 원하는 기반시설을 예산으로 갖추기 어렵다. 보상비가 크기 때문에 도시재생사업에는 500억원, 1000억원을 쏟아부어도 표시가 나지 않는다. 한계가 있다. 재개발·재건축 기부채납을 통해 기반시설을 확충하면 도시의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주거 개선 효과가 뚜렷하다.
성북구는 노후건축물이 많고 주거환경이 열악한 지역이 많아 정비사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주민들의 사업추진 의지도 강하다. 그런 면에서 성북구는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래서 신속추진단을 만들었나.
▲그렇다. 재개발·재건축 신속 추진을 위한 전담팀인 신속추진단을 만들어 1년 반째 운영하고 있다. 부구청장을 단장, 도시관리국장을 부단장으로 정비사업 전담 부서뿐 아니라 도시발전 로드맵의 핵심 역할을 하는 전 부서가 참여한다. 공공재개발, 신속통합기획 등 공모사업의 체계적인 관리와 정비사업 전문가들이 참여해 이해관계인의 갈등을 잘 풀어갈 조정위원회도 운영한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되고 10년 넘게 표류하던 신월곡1구역(일명 미아리텍사스촌)도 적법한 범위 내에서 구청이 가진 모든 재량권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지원해 현재 이주 진행 중이다. 공공변호사 2명을 투입해 1년 동안 문제 해결과 갈등 조정에 매달렸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장위동 역시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5년, 10년에 대한 중장기 로드맵을 다 마련해 놨다.
-올해 또 다른 중점분야는.
▲청년 목소리에 집중하고 그들의 요구를 정책에 더 많이 반영하려고 한다. 메타버스 구청장실을 마련해 소통의 장을 더 진화하고 확대하려는 계획도 있다. 올해 성북근현대문학관과 창작연극지원센터가 개관하면 성북구의 문화인프라가 더 풍부해질 것이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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