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박해준 "종일 노래하며 건배…소름 쫙 끼쳤다"
배우 박해준 인터뷰
'서울의 봄' 노태우 모티브 노태건役
"아이들 크면 반드시 보여주고 싶은 영화"
"축하연 장면을 온종일 찍었어요. 전두광(황정민 분), 노태건 등이 모두 모여 노래하고 건배하며 기뻐했어요. 촬영을 마치고 문득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너무 싫고, 소름이 끼쳤어요."
배우 박해준(47·박상우)은 12·12 군사반란을 모티브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의 하나회 축하연을 찍고 나서 "씁쓸했다"며 밝힌 소감이다. 실제 전두환은 쿠데타를 마친 직후인 1980년 1월 23일 서울 한 장소에서 보안사(하나회)와 '위로 파티'라는 이름의 축하연을 벌였다. 당시 한 방송사가 촬영한 영상은 영화 개봉 이후 온라인상에서 역주행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를 본 이들이 당시 영상을 찾아보면서 조회수가 크게 상승한 것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아시아경제와 만난 그는 "축하연 장면을 촬영하며 (카메라 앞에서) 종일 놀았다. 모두가 '와!' 소리치며 기뻐하는데, '이렇게 먹고 마시며 흥겨워해도 되나' 싶더라. 소름이 쫙 끼쳤다"고 떠올렸다.
영화 '비트'(1997) '감기'(2013) '아수라'(2016) 등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주동하고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가 중심이 되어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12·12 군사반란을 처음으로 스크린에 옮겼다.
'서울의 봄'은 당시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려, 개봉 6일 만에 누적 관객수 200만명을 돌파하며 주목받고 있다. 박해준은 노태우를 모티브로 삼은 노태건 역으로 분한다. 군사 반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9사단장이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에 출연하는 일은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다. 박해준은 "부담감이 없을 수는 없었지만, 김성수 감독님을 만나고 없어졌다. 감독님과 황정민 선배와 리딩을 하면서 '역할을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금방 적응했고, 흥미롭게 연기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떠올렸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 삼았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9시간의 이야기를 한다. 영화적 상상으로 만들어낸 부분이 많다. 노태건이 놓인 긴박하고 흥미로운 순간, 그 상황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노태건은 전두환을 모티브 삼은 전두광(황정민 분)의 친구이자 반란군의 2인자로, 전두광과 함께 군사 반란을 주도한다. 불도저처럼 내달리는 전두광에게 끌려가는 듯 보이지만, 엄청난 권력욕에 사로잡혀있다. 박해준은 자칫 밋밋한 주변인으로 비칠 수도 있는 캐릭터를 영리하게 표현했다. 욕망에 휩싸인 순간과 감정의 편린들을 겹겹이 쌓아 올려 입체적으로 보이게 한다.
"감독님과 이야기 나누면서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저 여기저기 끌려다니면서 전두광 의견에 합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견에 반대도 하고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고요. 엄청난 에너지로 달려가는 전두광의 위험을 느껴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인물로 표현했어요. 때로는 전두광에 반대하는, 나의 것을 만들어가고 싶었죠."
영화는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 박정희를 암살한 사건을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2020)과 연결된다.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 분)이 계엄법에 따라 수사 책임자인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되면서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후 5·18 민주화운동을 그린 '택시운전사'(2017), 6월 민주항쟁을 다룬 '1987'(2017)로도 이어진다.
박해준은 "당시 기억은 없지만, 12·12 군사반란에 대해 이 나이대 사람들은 안다. 전래동화 듣듯이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딱 그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영화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다. 많은 분이 좋은 마음으로 영화를 응원해주시는 거 같아서 기쁜 마음으로 인터뷰 자리에 앉았다.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다만 오해가 생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가 다양한 생각을 토론하는 장을 마련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이 아직 어리지만, 더 크면 '서울의 봄'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박해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 잘생기고 훤칠한 외모로 '한예종 장동건'으로 불렸다. 2007년 연극 '그때, 별이 쏟아지다'를 시작으로 무대에서 활동하던 그는 영화 '화차'(2012)에서 악랄한 사채업자 역으로 얼굴을 알렸다. 본격적으로 이름은 알린 건 드라마 '미생'(2014)을 통해서다. 이후 영화 '4등'에서 드러낸 얼굴도 인상적이라는 평을 얻었다. 뜨거운 인기를 끈 출세작 '부부의 세계'(2020)를 기점으로 다수 영화·드라마에서 활약 중이다.
"최근에 쉬지 않고 계속 활동했어요. 사실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영화 개봉이 밀리면서 조금 지쳐있었어요. 그런 제게 '서울의 봄'은 힘을 실어준 고마운 작품이에요. 좋은 시기에 나타난 선물 같은 영화죠. 덕분에 기운을 많이 얻었어요.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알아줬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주변에서 알아주더라고요. 좋은 말을 많이 들었어요. '내가 가는 길이 헛된 길은 아니구나',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계속해도 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박해준은 올해 1분기, 꿀 같은 휴식을 가졌다고 했다. 작품이 끝난 후 갑자기 주어진 여유였지만, 이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다음 작품 걱정 없이 온전히 쉴 기회가 생겼다. 정말 오랜만에 쉬는 시간을 가져서 그런지 어떻게 채워야 할 지 몰랐다. 그게 내내 아쉽다. 아이들 커가는 것도 보면서 아빠로서 인정받고도 싶은데, 일하기가 싫어지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쉬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앞으로 또 기회가 생기면 잘 쉬고 싶다. 가족 여행도 가고, 하나 없는 취미도 가져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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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하는 사람' 박해준은 배우로 일관된 연기관을 유지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 늘 그렇듯이 연기를 담백하게 하고 싶다. 엄청나게 자연스럽게 하고 싶다. 데뷔 때부터 리얼한 연기가 가장 유니크하다고 생각해서 해왔는데, 요즘은 다들 자연스럽게 연기를 잘하더라. 처음 가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흥미 있게 봐줄 수 있는 재미까지 있으면 어떨까, 요즘 가장 고민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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