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에 도달한 후에도 촉탁직(기간제) 근로계약을 통해 재고용될 것이라는 기대권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규정이 존재하거나 사업장에 그에 준하는 관행이 확립돼 있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명시적인 규정이나 관행이 없는 경우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와의 근로관계 유지 여부는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기 때문에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하지 않더라도 부당해고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서울 서초동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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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부산에서 요양원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판결을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는 정년 후 재고용 기대권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A씨(63·여)는 2018년 3월부터 법인과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며 법인이 운영하는 요양시설에서 요양보호사로 근무했다. A씨가 60세 정년에 도달하게 되는 2020년 1월1일자 근로계약서에는 계약기간을 2020년 1월1일부터 7월31일까지로 정했고, '계약기간의 만료로 본 계약은 당연 종료된다. 단, 본 계약의 만료 전까지 계약의 갱신 또는 연장, 재계약을 할 수 있다'라고 기재돼 있었다.


한편 법인의 취업규칙이나 요양원 운영규정에는 '직원의 정년을 만 60세로 하고 만 60세가 되는 달의 말일에 퇴직한다'고 정하면서, 법인이 업무 필요에 따라 정년 퇴직자를 계약직으로 재고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법인에 정년 퇴직자를 촉탁직 근로자로 재고용할 의무를 부과하는 취지의 규정은 없었고, 촉탁직 재고용 여부를 심사하는 기준이나 절차 역시 마련돼 있지 않았다.


요양원은 계약기간 종료를 한달 앞둔 6월 요양보호사이자 노동조합 분회장이던 A씨에게 '정년이 도래했으므로 근로계약을 종료하겠다'고 통지했다.


A씨는 요양원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종료하고 재고용하지 않은 것은 부당해고라며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2021년 2월 "A씨에게 정년 이후 촉탁직 재고용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되고, 요양원이 A씨의 재고용을 거절한 데 합리적인 이유가 없으므로 부당해고가 인정된다"며 A씨의 구제 신청을 받아들였다.


요양원 측이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 법원은 중노위의 판단이 맞는다며 요양원 측의 취소 청구를 기각했다.


A씨를 비롯해 정년이 도래한 근로자 5명 중 2명이 촉탁직으로 재고용되는 등 관행이 있었다는 이유였다. 요양원 측은 A씨가 같은 성별인 여성 입소자·직원 앞에서 춤추며 뱃살과 속옷을 3~4초간 노출했다가 ‘직장 내 성희롱’ 의혹으로 정직 1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어 재고용을 거부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징계 자체가 부당하므로 타당한 거부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먼저 대법원은 올해 6월 선고된 대법원 판례를 원용했다.


앞서 대법원은 ▲정년에 도달해 당연퇴직하게 된 근로자와의 근로관계를 정년을 연장하는 등의 방법으로 계속 유지할 것인지 여부는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는 것으로서, 근로자에게 정년 연장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할 수 없지만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서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거나 ▲사업장에 그에 준하는 정도의 재고용 관행이 확립돼 있다고 인정되는 등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근로자가 정년에 도달하더라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될 수 있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에는 근로자가 정년 후 재고용에 대한 기대권을 갖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대법원은 그 같은 관행의 존부는 재고용을 실시하게 된 경위 및 그 실시기간, 해당 직종 또는 직무 분야에서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 중 재고용된 사람의 비율, 재고용이 거절된 근로자가 있는 경우 그 사유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원고의 취업규칙과 요양원의 운영규정은 정년을 만 60세로 하고 만 60세가 되는 달의 말일에 퇴직한다고 정하면서, 원고가 업무의 필요에 의해 정년 퇴직자를 계약직으로 재고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원고에게 정년 퇴직자를 촉탁직 근로자로 재고용할 의무를 부과하는 취지의 규정은 없고, 촉탁직 재고용 여부를 심사하는 기준이나 절차 역시 마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와 A씨 사이의 근로계약서에서 정년까지를 근로계약기간의 종기로 정한 점, A씨 외에도 정년퇴직 처리된 근로자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의 정년 규정이 형식에 불과했다거나 A씨와 같은 기간제 근로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규정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실제 A씨를 포함해 정년 이전에 요양원에 입사한 근로자는 모두 5명이었는데, 그중 1명은 정년 도달을 앞두고 퇴사했고, 2명은 정년이 된 후 다시 법인과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했지만, A씨를 포함한 2명은 정년 도달을 이유로 근로계약이 종료됐다.


재판부는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를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존재하거나 원고의 사업장에 그에 준하는 정도의 재고용 관행이 확립돼 있었다고 보이지 않으므로 A씨에게 정년 도달 후 원고와 촉탁직 근로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되리라는 기대권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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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A씨가 정년퇴직 이전에도 기간제 근로자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이와 달리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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