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잇단 온라인 '살인예고글'에 시민들이 불안에 빠지면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잇달아 국회에 발의됐지만, 소관 상임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으며 21대 국회 임기 내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전문가들은 살인예고글을 '테러 행위'로 규정하며 법 개정을 통한 단죄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1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서 살인예고글 처벌과 관련해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3건이 발의됐지만, 아직 소관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힘 김영식, 김용판, 홍석준 의원이 지난 8월 각각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온라인 공간에서 흉악범죄를 예고할 경우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하는 등 처벌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도록 상임위에서 단 한 차례도 다뤄지지 않았고,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임기 만료로 인한 폐기가 유력하다.
지난 7월21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서 조선(33)이 4명을 상대로 흉기난동을 벌인 사건에 이어 지난 8월3일 경기 성남시 서현역에서 최원종(22)의 칼부림 사건이 발생하자 온라인에는 모방 범죄 예고글이 계속 올라왔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7~8월 두 달 동안 흉악범죄 예고글만 487건이 확인됐다. 잇단 살인예고글에 시민들이 불안을 호소하면서 경찰 출동도 줄이었다.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 이후 한 달간 출동한 경찰 인력은 자율방범대 치안보조인력 4800명을 포함한 1만7503명에 달한다.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면서 정부도 강력 대응을 시사했다. 지난 8월24일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살인예고글 게시는 국민들을 불안에 빠뜨리고 공권력의 적정한 행사를 방해하는 중대 범죄다"며 "형사책임뿐만 아니라 민사책임까지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공중협박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도 덧붙였다. 대검찰청도 일선 검찰청에 소년범일지라도 살인예고글 작성자는 가급적 정식 기소하는 등 엄정 대응을 지시했고, 경찰은 살인예고글을 올린 초등학생도 입건하고 소년부 송치하는 등 강력히 대응했다. 실제 미국, 독일 등도 공중에 대한 협박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따로 두고 있다.
신림역에서 여성을 살해하겠다고 예고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20대 남성 A씨가 지난 7월27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하지만 법 미비로 실제 처벌은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단독 양진호 판사는 협박, 살인예비,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26)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씨는 지난 3~7월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녀(한국여성)들 죄다 묶어놓고 죽이고 싶다"고 말하는 등 살인예고글을 계속 올린 혐의를 받는다. 하지만 재판부는 "일부 폭력적 표현은 있어도 그 자체로 공포심을 유발했다고 보기 힘들다"며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또 지난 8월8일 "서울 청량리역에서 사람을 찔러 죽이겠다"고 한 30대 남성 A씨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만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전문가들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살인예고글을 테러 행위에 준해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신민영 법무법인 호암 대표변호사는 "현행법으로는 협박, 살인예비 등 혐의는 대상이 특정돼야만 제대로 적용 가능한 한계가 있다"며 "22대 국회에서라도 법 개정을 통해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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