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마음
지리산댐백지화 및 지리산살리기운동 백서

많은 사람이 잊었다. 지리산에 댐이 건설될 뻔했다는 것을. 지리산에 댐이 생기면 산을 둘러싼 생태계가 무너지고 문화유산이 소실되며 이곳에서 삶을 일구고 있는 이들이 생활 터전을 잃게 될 수 있다는 것은 이 건설 계획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안다. 하지만 이를 깡그리 무시하는 개발의 논리가 있었다. 그렇게 1998년 버젓이 지리산에 대규모 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계획이 백지화되기까지는 20년이 걸렸다. ‘지리산의 마음’은 이 20년 동안 댐을 반대하고 지리산을 살리기 위한 운동이 어떻게 전개됐고 어떤 좌절을 겪었으며 어떻게 성취했는지 빼곡히 담고 있다.


이 책은 지리산댐백지화 운동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의 글 21편으로 구성됐다. 종교인, 예술가, 마을 주민, 활동가, 학자, 학생 등이 필자로 참여했다. 지리산댐 논의의 시작은 부산·경남 주민의 식수인 낙동강 수질 개선이었다. 낙동강을 살리기보다는 대체 상수원 개발로 정책 방향이 정해지면서 지리산댐 건설 계획이 세워졌다. 개발로 오염된 강의 기능을 대신하기 위해 산을 개발하겠다는 논리. 그렇다면 지리산에 댐이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됐을까. 당시 남원시 시의원이자 지리산댐 백지화 남원대책위 공동위원장이었던 김종관 씨는 "지리산에 위치한 명승지 용유담이 수몰되고 천년고찰 실상사에 변화된 기후로 인해 보전 관련 문제가 발생해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 예상됐다"며 "기후변화와 잦은 안개 속에서 농산물이 제대로 재배되지 않아 어려운 현실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고향 땅에 살다가 고향 땅에 묻히게 해달라",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아름다운 고향을 지키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더해져 20년의 운동을 지탱했다.

[빵 굽는 타자기]'지리산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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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에서 쉼터이자 도피처였고 기도터이자 수행지였던 민족의 영산(靈山) 지리산이기 때문에 의미가 부여돼 시작됐지만 그것은 지리산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지리산에 생명과 안전과 평화를 기준으로 삼아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생명평화 세상, 오래된 미래의 그 꿈을 가로막는 부당한 국가정책에 맞서서 굳건히 삶터를 지켜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외연을 확장한다. 당시 함양제일교회 목사이자 지리산을 사랑하는 열린 연대 운영위원장이었던 양재성 씨는 "생태계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가장 큰 군집을 이루는 것이 지리산"이라며 "지리산은 그냥 하나의 산이 아니라 한반도 남한 전체의 영성과 정신과 생명 가치,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세계관까지도 제시해주는 산"이라고 썼다. 과정은 지난했지만 성과는 빛났다. 지리산댐 백지화운동은 결국 정부의 댐 정책, 수자원 정책까지 바꿨다. 많은 이들이 정부나 지자체의 잘못된 결정에 지역 주민들이 공동대응해 성취해낸 몇 안 되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전설’이라고도 한다.


많은 사람이 이젠 ‘지리산댐’을 잊었다. 하지만 이 책은 지리산댐 백지화가 선언된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지리산살리기운동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리산 권역에 초대형 식수댐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여전히 나온다. 무엇보다 한반도 전역의 산과 물을 파헤치고 오염하는 사업이 공공연히 제안된다. 어디에서 ‘제2의 지리산댐’과 같은 일이 고개를 내밀어도 이상하지 않다. 다시, ‘지리산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할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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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마음/지리산댐백지화 기념사업회(준) 엮음/삼인/2만5000원)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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