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제 금통위원 "경기대응보다 구조변화"
재정·통화정책으로는 장기 성장 한계 있어
관치금융 아래 성장해온 기업
기술혁신으로 영업이익률 높여야

“경기대응 정책보다 훨씬 중요한 게 구조변화입니다. 일본이 이걸 못했으니까 따라갈 모델도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해나가야 합니다. 누구한테 맡기겠습니까. 스웨덴·네덜란드 모델이요? 우리에게 적용하면 한국적 변이를 낳는 걸 경험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우리의 역사 ·시장·제도를 고려한) 실사구시적 개혁을 해야 합니다.” (6월, 조윤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취임 후 좀처럼 쓴소리를 아끼던 조윤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지난 6월 초 '대전환의 시대 : 한국경제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제목으로 한은 직원들에게 특별강연한 자리에서 한국 경제를 위한 과제로 ‘구조개혁’을 강조했다. 조 위원은 “경제는 단순히 경제적 기반뿐만 아니라 경제외적 기반이라는 두 기둥 위에서 발전, 진화해 나간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 시대지만 아직 사회과학 쪽에서는 선진국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경제정책의 정치화, 계층의 고착화, 고시·학벌·지연의 지대추구 등이 우리 경제 외적 기반의 취약성이라고 지적했다.

1%대의 저성장, 0명대의 저출산, 무역수지 불황형 흑자 등을 맞이한 국면에서 조 위원의 강연에 대한 반향은 컸다. 해당 강연은 당초 비공개로 임직원을 대상으로만 진행됐지만, 한은 직원들의 요청으로 유튜브에 공개됐다.


조윤제 한국은행 금통위원.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조윤제 한국은행 금통위원.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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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내 협치·사회적 대타협으로 국가지배구조 개편해야”

강연에서 조 위원은 지난 60년간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돌아봤다. 조 위원은 1980년대까지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동인으로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 등을 꼽았다.

조 위원은 특히 신분계급질서의 붕괴를 의미하는 ‘인화’를 가장 결정적인 동인으로 꼽았다. 그는 “2000년 넘게 계급사회였던 우리나라의 신분제도가 19세기 말 붕괴됐다”며 “법적으로는 1912년 조선민사령을 기점으로 ‘인권’이라는 게 침범할 수 없는 사유재산이 됐다”고 설명했다. 신분 철폐로 국민의 출발점이 같아지고, 그에 따라 교육열풍이 강해진 덕분에 누구나 잠재력과 역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됐다는 설명이다.


또, 2차 대전 이후 관세율을 대폭 낮추고 수출입 제한을 완화했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브레튼우즈 체제 출범을 ‘천시’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제3세계에서 신흥 강자로 칠레·인도·브라질 등이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인적 자원이 풍부한) 아시안 4마리 용(대한민국·홍콩·싱가포르·대만)에게 기회가 생겼다”고 부연했다.


‘지리’ 동인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외자 조달에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 위원은 “우리나라가 냉전시대에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경험도 했지만, 이게 모멘텀이 돼 한미상회방위조약을 체결하는 등 미국과 동맹을 맺고 외화 조달에 유리해졌다”며 “당시 국내 저축률이 낮았음에도 많은 투자를 받고 높은 성장률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말했다.


조 위원이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지적한 이유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중국이 급부상하고 외환위기를 겪는 등 우리나라의 대내외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신냉전체제 이후 중국의 추격을 받으며 제조업 상승세가 떨어졌고, 지식기반 서비스업을 발전시킬 충분한 시간 여유를 못 가졌다”며 소득분배, 과다부채, 인구 고령화 가속, 경제력 집중, 부동산 가격 앙등과 같은 문제가 생겼다고 언급했다.


그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앞으로 10년 안에 해야 할 3가지로 ▲국가지배구조 개편 ▲전반적인 인센티브 체계 재구성 ▲공공부문 혁신을 꼽았다.


국가지배구조 개편에 관해서는 성공하기 위한 정부의 조건으로 지도자, 비전, 참모진, 정치적 세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어떤 정부든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비전을 가져야 하고, 그 비전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 맞아떨어져야 하고, 현실적 정책으로 재단해서 낼 수 있는 유능한 참모진을 가져야 하며, 그것을 밀어붙일 수 있는 정치적 세가 있어야 한다”며 이중 가장 중요한 게 정치적 세라고 강조했다. 다만 지금과 같은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정치적 세를 얻기 어려우니 협치와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바람직한 성과급 제도를 위해 철저한 직무분석과 올바른 직무평가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조 위원은 “평가가 인사와 승진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공공기관부터 인사제도를 혁신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공부문이 지금의 관료 시스템을 벗어나 경쟁이 필요하다는 점도 시사했다. 조 위원은 “한국은 1인당 GDP 3만5000달러에 인구 5000만명을 가진 나라”라며 “실질적으로는 G7과 경쟁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 나라들의 엘리트들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하고 정부, 정치도 그 나라 수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1960년대 이후 영업이익률 내리막길…기업부채 관리·기술혁신 필요

조 위원은 최근에 기업 경영 측면에서도 지난 60년과 달라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지난달 말 최연교 통화신용연구팀 과장과 최근 발간한 '지난 60년 경제환경변화와 한국기업 재무지표 변화'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기업들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1960년대 이후 점차 하락해 왔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대 들어 특히 미국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한국기업보다 크게 높아지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에서 최첨단 기술과 경쟁력을 가지며 전세계에서 독과점 지위를 누리는 것과 관계가 있다. 조 위원은 “우리 기업도 영업이익률을 높이려면 비용절감 등 다른 여러 분야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현재 우리의 반도체기업, 자동차기업들과 같이 글로벌 시장에서 어느 정도 독보적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혁신과 개발을 해나가지 않으면 힘들 것임을 시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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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조 위원은 지난 60년간 우리나라 기업이 관치금융의 비호 아래에서 성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 위원은 “과거 정부의 금융개입과 과도한 정책적 지원이 대기업들의 안정성을 저하하고, 외부 충격이나 경기변동에 취약하게 해 결국 부채위기를 맞았다”며 “현재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차입금의존도, 부채비율, 낮은 이자보상배율이 지속되고 있는데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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