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 35도' 선풍기도 없는 쪽방촌 사람들.."차라리 밖이 덜 덥다"
31일 오후 1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인근 어린이놀이터는 기온 35도 내외의 폭염에 공기가 후끈했다. 무더위에 실내에 있는 것이 더 시원할법하지만, 쪽방촌에 거주하는 노인 20여명이 놀이터에 모여 있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오히려 집에서 나온 것이다. 가끔 부는 뜨거운 바람에도 노인들은 "아, 시원하다"고 좋아했다. 어떤 노인들은 막걸리로 목을 축이기도 했다.
쪽방촌에서만 20년을 거주한 문장석씨(72·남)는 매일 오전 7시30분 아침만 먹고 나면 놀이터로 온다. 집이 너무 더워서 들어가기조차 힘들어서다. 그는 놀이터에 앉아있다가 점심, 저녁때가 되면 무료급식소로 이동한다. 저녁을 먹고 해가 지면 다시 집으로 향한다. 그때야 집은 식어서 들어갈 만하다. 이 더위 속에 문씨는 최근 선풍기를 버렸다. 8번째로 이사한 집에 도저히 선풍기 놓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씨는 "초여름만 해도 모기장을 치고 창문과 현관문을 열면 바람이 통해 시원했다"며 "이제는 버티기 힘들 정도로 더워서 밖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심각해진 폭염은 사회적 취약계층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달 29~30일 동안 폭염으로 인해 전국에서 최소 12명이 사망했다. 이미 지난해 전체 9명을 넘어선 수준이다.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신고현황'을 보면, 지난 5월20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1117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해 전년 동기와 비교해 69명 늘었다.
체감온도가 35도에 달하던 31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한 공원에 무더위를 피해 집 밖으로 나온 쪽방촌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공병선 기자 mydillon@
원본보기 아이콘쪽방촌은 폭염에 가장 취약한 곳 중 하나다. 집집마다 제대로 된 냉방시설이 없어서다. 목욕시설도 안 갖춰진 곳이 많아 찬물로 씻는 게 사치이기도 하다. 동자동에 거주하는 김윤희씨(44·여)는 "이제는 겨울보다 여름이 힘들다"며 "겨울은 보일러를 틀고 옷이라도 동여매면 춥지 않은데 여름에는 선풍기를 틀어도 뜨거운 바람만 나온다. 정말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더워졌다"고 말했다. 문씨도 "팔다리가 저리고 덜덜 떨려서 집에서 나오기가 힘들지만 쪄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며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아예 나오지도 못하고 폭염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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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쪽방촌 풍경은 기후위기가 곧 인권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기후위기는 인권에 매우 광범위하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최대 위협 요소"라며 "기후변화가 취약계층의 고용, 노동조건, 주거, 건강, 위생 등에 미치는 위협 요소를 분석해 취약계층 보호 및 적응역량 강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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