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배터리에 숨은 이야기
전기차용 배터리가 주력상품인 LG에너지솔루션은 요즘 한국서 가장 빛나는 기업이다.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사상최대인 6332억원. 작년보다 144% 증가했다. 당장 버는 돈으로 보면 한국 기업 가운데 5~6위 정도지만 시가총액에선 삼성전자와 1~2위를 다툰다. 주가는 사람들이 본 회사의 미래가치를 반영한 숫자. 앞으로 회사가 더 빛난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LG의 보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처음부터 보석이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천덕꾸러기였다. 요즘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은 그 시절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당시 화학 대표가 돌아가신 구본무 회장님께 사업 접어야 한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 한 임원은 "마지막엔 회장께서 경영평가를 할 때 배터리 사업 실적은 빼겠다고 하셨다"고 했다.
대표도 월급쟁이다. 매년 평가를 받는다. 이익을 더 내야 한다. 배터리 사업은 늘 적자로 LG화학 대표의 발목을 잡았다. 대표 입장에선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오너 생각은 달랐다. 당장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미래를 생각하면 꼭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대표와 회장의 생각은 왜 달라졌을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왜 이런 일이 있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90년대부터 현대차는 전기차를 생각했다. 처음엔 전기차 심장인 배터리를 일본 파나소닉에서 받으려 했다. 하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전자제품용 소형 배터리를 만드는 LG그룹에 도움을 청했다. 당시 기술수준에선 자동차용 대형배터리는 만들기 힘든 제품이었다. 심지어 수요도 없었다.
"구본무 회장과 최태원 회장께 미래를 위해 대형 배터리를 생산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현대차 최고기술책임자(CTO) 역할을 오래 한 두산그룹 이현순 전 부회장 말이다. 그는 미국 GM 연구원으로 있다가 80년대 현대차에 입사, 독자엔진개발을 지휘했다. 현대차가 만든 수소차, 전기차가 남보다 먼저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 건 그가 연구개발본부장으로 기초를 닦아 놓은 덕분이라는 평가다.
당시 국내 배터리 업계 최강자는 삼성SDI였다. 하지만 그는 삼성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땐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왜 그랬는지 말할 수 있다.
한국 주요기업은 경쟁하며 동시에 협력한다. 전기차는 그 협력의 극치다. 반도체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텔레칩스, 넥스트칩이 공급한다. 디스플레이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제품이다. 심장 역할을 하는 배터리를 LG, 삼성, SK가 만든다. 모터엔 LG마그나와 PHC 상표가 붙어있다. 현대차 측은 "부품 국산화율을 따져보진 않았지만 99%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자동차용 특수 반도체 정도를 제외하면 모든 부품을 한국기업이 만든다. 최근 그 특수반도체조차 삼성전자가 공급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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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국 대표 상품들은 핵심부품이 외제인 경우가 많았다. 휴대폰 통신칩은 퀄컴, PC용 CPU는 인텔이 만들었다. 한국 대표 상품인데 국산이라고 하기에는 좀 껄끄러웠다. 전기차는 주식회사 한국이 만든 최초의 명실상부한 국산 한국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주요 기업 오너와 대표들이 14일 ‘코리아 H2 서밋’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전기차 다음은 수소차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기업들이 힘을 합쳐 수소차가 굴러갈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수소를 생산, 분배, 소비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수소차가 움직인다. 아직 어느 나라도 온전한 수소생태계를 만들지 못했다. 세계는 지금 수소 패권 경쟁 중이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업 사이에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정부도 기업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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