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신작 ‘효명’ 오는 6월23일 개막
궁중정재 23종 남긴 효명세자의 이상 그려

1828년 음력 6월 창덕궁 연경당에서 조선 23대 왕 순조의 비 순원왕후의 사순(40세) 잔치가 성대하게 열렸다. 당시 아버지 순조를 대신해 대리청정을 맡고 있던 효명세자가 정성을 다해 직접 마련한 자리였다.


효명세자는 혼란에 빠진 조선을 바로잡기 위해 예(禮)로 기강을 세우고 악(樂)으로 소통하는 '예악정치'를 꿈꿨다. 그는 잔치에서 선보일 여러 궁중정재(조선 왕실의 연회나 국가 의식에서 공연되던 궁중 예술)를 직접 창작하거나 재정비했다. 특히 오늘날 궁중정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춘앵무는 효명세자가 봄날 버들가지 위에서 노래하는 꾀꼬리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한 작품으로 이날 잔치에서 처음 공개됐다.

국립창극단이 춤을 사랑하고 예악정치를 꿈꿨던 효명세자를 주인공으로 한 신작 창극 '효명'을 오는 6월23~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은 19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에서 "우리 궁중무용은 화려함보다는 절제의 미학이 담긴 춤"이라며 "전통예술 장르 가운데 가장 활성화된 창극 안에 궁중무용을 녹여 그 매력을 알리고 싶었다"고 제작 의도를 설명했다. 유 단장은 이어 "현재 전해지는 궁중정재 53종 가운데 23종이 효명세자가 만든 작품"이라며 "춘앵무는 우리나라 최초의 독무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가운데)이 19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에서 신작 '효명'의 제작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만희 작가(왼쪽)와 임지민 연출. 연합뉴스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가운데)이 19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에서 신작 '효명'의 제작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이만희 작가(왼쪽)와 임지민 연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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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아들이자 효명세자의 아버지인 순조는 1790년 10세의 나이로 즉위해 34년간 재위했다. 그러나 순조 재위기에는 세도정치가 심화되며 왕권이 약화했고 조선 사회도 큰 혼란을 겪었다. 효명세자는 어머니의 사순 잔치를 계기로 궁중 연향과 정재를 새롭게 정비해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는 조선 후기 궁중 예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김재덕 안무가는 "효명세자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대단한 인물인지는 처음 알았다"며 "조선 스타일의 궁중무용을 정립한 인물이 바로 효명세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에는 효명이 구현하고자 했던 궁중무용을 표현하기 위해 김재덕 안무가가 이끄는 현대무용단체 '모던 테이블'의 무용수 16명이 출연한다. 김 안무가는 "첩승무, 공막무, 가인전목단, 춘앵무, 검기무 등 여러 궁중무용을 배우고 연습했다"며 "이를 정확히 재현하기보다는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 표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공막무는 작품의 핵심 소재로 등장한다. 극에서 효명세자가 어머니의 사순 잔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직접 추는 춤이다. 극 중 효명세자는 묘묘라는 여인과 함께 2인무인 공막무를 춘다. 묘묘는 극적 긴장감을 위해 설정된 가상의 인물로, 세도가들과 내통하며 효명세자의 목숨을 노리는 살수다.


실제 역사 속 효명세자는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21세에 요절했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개혁을 추진하던 젊은 차기 권력자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다는 점에서 작품 속 살수 설정은 흥미로운 극적 장치로 읽힌다.

국립창극단 신작 '효명'에서 '효명' 역을 맡은 김수인 단원(왼쪽)과 '묘묘' 역의 김우정 단원이 공막무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국립창극단

국립창극단 신작 '효명'에서 '효명' 역을 맡은 김수인 단원(왼쪽)과 '묘묘' 역의 김우정 단원이 공막무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국립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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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민 연출은 "효명세자에 관한 책을 읽으며 특히 두 가지가 인상 깊었다"며 "하나는 정재를 창작한 안무가적 면모였고, 다른 하나는 세도정치가 만연한 시대에 대리청정을 맡은 지 3년 만에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묘묘는 점차 효명세자에게 감화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임 연출은 정치가이면서도 예술가적 기질을 지녔던 효명세자의 모습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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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효명세자가 직접 정재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분명 예술가적 잠재력을 지닌 인물이었을 것"이라며 "여러 반대 속에서도 예술을 통해 사대부들과 균형을 맞추려 했던 그의 정재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무대 위에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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