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깅 트래블]길 위의 도서관, 청남대부터 스카이워크까지 '충북을 걷다'
①내륙의 바다, 대청호 아우르는 청량한 충북 '걷기 코스'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다. 매번 길 위에 놓인 평범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서관,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의 기억을 매개하는 도서관인 동시에 표지판, 폐허, 기념물 등이 베풀어주는 집단적 기억을 간직하는 도서관이다. 이렇게 볼 때 걷는 것은 여러 가지 풍경들과 말들 속을 통과하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는 행위를 예찬하며 길 위를 도서관이라 칭했다. 책 읽는 것만큼이나 걷는 동안 마주하는 풍경과 걷는 동안 지속하는 사색이 주는 기쁨은 웅숭깊고 오롯하다. 출근과 퇴근으로 점철된 도심 속 일상에서 벗어나 호젓한 길을 걸으며 깊은 사색에 잠기고 싶다면, 충청북도를 주목해보자. 오직 권력자만을 위해 조성된 청남대 산책길부터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스카이워크, 그리고 잔잔한 강물을 따라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걷는 잔도길 까지. 조선시대 선비들도 일찍이 ‘단양팔경’을 단순한 명승지가 아니라 심정(心情)을 수양하는 정신적 순례지라 동경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맨 처음 향한 충청북도의 명소는 대통령의 별장, 청남대다.
대통령이 걸은 길 위에서의 사색, '청남대'
전국 곳곳엔 지역 특색을 살린 다양한 산책로가 있지만, 청주는 숲과 호수를 갖춰 한층 특별한 산책로와 풍경을 선사한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숲길을 자랑하는 청남대는 1983년 개관 후 2003년 일반에 개방될 때까지 20년간 대통령의 별장이었다. 대통령 집무실, 응접실, 침실 등을 관람할 수 있는 본관을 지나 대청호가 내려다보이는 숲에는 13.5km에 달하는 산책로가 조성돼있다. 124종, 11만6000그루의 조경수와 143종, 35만 송이의 꽃이 걷는 내내 산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길의 종류도 다양하다. 청남대를 국민에 돌려준 노무현 대통령길은 10월 참나무와 단풍나무가 물들인 가을의 색채가 인상 깊은 구간이다. 호숫가부터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김대중 대통령길은 참나무와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2.5km 구간으로 나무 사이로 비치는 대청호의 윤슬과 청명한 하늘이 조화를 이루는 코스다.
노태우 대통령길과 전두환 대통령길은 각각 청남대 본관과 별관으로부터 멀지 않은 1.5~2km 내외로 구성된 완만한 코스로 아이들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1km 코스인 김영삼 대통령길은 김 전 대통령이 낚시를 즐겼던 양어장을 지나 음악분수를 감상할 수도 있어 선호도가 높다. 뒤로는 넓은 골프장 잔디밭과 낙우송의 아름다움이 더해져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은 명소다.
숲길 중간에는 645개 계단으로 이뤄진 전망대가 청남대와 대청호를 아우르는 풍경을 선물한다. 널따란 호수와 땅이 맞닿은 지점은 다도해의 절경과도 닮아있다. 호숫가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다 보면 나 역시도 그림 같은 풍경의 일부로 녹아들게 된다.
색다른 풍경 속 액티비티 즐기는 '만천하스카이워크와 잔도길'
신선이 먹는 환약만큼이나 아름다운 풍경이 주는 치유의 효과가 커서였을까. 단양의 지명은 연단조양(鍊丹調陽)에서 유래했다. 신선이 먹는 환약을 뜻하는 연단과 햇빛이 고루 비춘다는 뜻의 조양을 합쳐 ‘신선이 다스리는 살기 좋은 고장’이란 뜻이 담겨있다. 격암 남사고가 단양의 풍경을 보고 ‘사람 살리는 산’이라며 엎드려 절했다는 일화까지 듣고 나면 대체 이 지역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2017년 개장한 단양 잔도길은 암벽과 남한강 사이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뷰포인트 코스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경험하지 못한, 깎아지른 암벽과 발아래 흐르는 강 위를 떠다니듯 걷는 길은 총 1.1km 구간으로 단양군 보건소부터 만천하스카이워크에 이른다. 물 흐르듯 당도한 만천하스카이워크는 만 개의 골짜기, 천개의 봉우리라는 뜻의 만학천봉(320m) 위에 세워진 구조물로 100m 이상 높이를 자랑한다.
멀리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규모에 더해 굽이굽이 돌아올라 꼭대기 전망대에 도착하면 저 멀리 소백산 연화봉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만천하 스카이워크에 이르는 길은 잔도길을 비롯해 모노레일, 슬라이드, 알파인코스터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도 있어 2030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 진가가 알려지면서 지금은 단양 잔도길과 함께 한국 관광 100선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단양팔경 중 단연 으뜸, 신선이 노닐던 풍경 속 '도담삼봉'
퇴계 이황은 단양군수 시절 도담삼봉을 바라보곤 이를 단양팔경 중 으뜸인 1경이라 칭했다. 남한강 상류, 3개의 기암이 우뚝 솟아 이룬 절경은 단원 김홍조와 겸재 정선의 붓끝을 움직였고, 퇴계 이황과 추사 김정희의 시심을 흔들었다. “석양의 도담삼봉에 저녁노을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별빛 달빛 아래 금빛 파도 너울지네” 퇴계가 신선의 뗏목을 타고 별빛 달빛을 즐겼다면, 지금은 유람선을 타고 한 시간 남짓 삼봉을 둘러싼 남한강 일대를 둘러보는 코스가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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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바라보는 도담삼봉과 정자 삼도정을 지나면 단양팔경 중 8경인 석문도 만날 수 있다. 유유자적 물살에 몸을 맡긴 유람선 위에서 풍경을 즐기다 보면 신선놀음이 부럽지 않은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최근 단양군은 도담삼봉 너머의 도담마을 앞 하천부지에 1만7400㎡ 규모의 정원 조성계획을 밝혔다. 몇 차례의 계절이 지나고 나면 금계국, 양귀비, 팜파스 등이 제 색을 뽐내는 남한강 앞 정원에 황포돛배를 타고 갈 수 있다고 하니 단양만의 몽환적 풍경은 한층 더 그 깊이를 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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