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피해자 주장만 되풀이
고소 공방 여론전에 본질 흐려져
대학 졸업 후에도 변변한 직업 없이 지내던 강현수는 찌질한 인생을 한방에 바꾸려고 주식에 투자했다가 쪽박을 찬다. 강현수는 독기를 품고 주경야독 주식을 공부해 드디어 거액을 번다. 그런데 그게 하필이면 작전세력이 공을 들이던 종목일 줄이야. 그들의 작전을 망친 강현수는 납치돼 생사를 넘나드는 테스트 끝에 600억짜리 작전에 휘말리게 된다.
2009년 2월 개봉한 영화 ‘작전’의 줄거리다. 작전에 가담한 세력은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23년 현재,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폭락 관련 주가 조작 의혹 사태가 벌어졌다. 2~3년여에 걸친 치밀한 시세 조정, 다단계식 수법으로 투자자 모집, 유명 연예인과 기업인, 전문직 재력가 등장, 차액결제거래(CFD)를 활용한 레버리지 투자 등 흥미진진한 요소가 많다.
레버리지 포함 투자금이 2조원 정도라고 밝힌 이번 의혹의 핵심 인물 라덕연 H투자컨설팅 대표는 일임매매 관련 불법은 인정하지만 통정매매 사실은 부인하고 있다. 그러면서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을 주가 폭락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했다. 김익래 회장 측은 라 대표의 주장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법무법인 이강은 피해자 10여명을 대리해 주가 조작 일당을 사기·조세,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했다. 임창정씨 등도 “나도 (돈을 날린) 피해자”라고 항변하고 있다.
가해자는 없고 서로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고소 공방으로 여론전을 펼치는 양상이다. 여기에 보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온갖 설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패한 주가 조작’이라는 이번 사태의 본질이 흐려질 조짐도 보인다. 아직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아서겠지만 사건의 진상보다 등장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이 눈길을 끄는 형국이다. 그나마 금융위·금감원이 검찰과 함께 꾸린 합동수사팀으로 소통 창구를 일원화하겠다고 방침을 정한 건 혼선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잘한 일이다.
합동수사팀은 본질인 ‘주가 조작’에 집중해 이번 사태의 원인과 진행 과정, 주범과 공범 등을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 이를 모방하거나 업그레이드한 또 다른 범죄를 막을 경험을 쌓고 대책도 마련할 수 있다.
사실 이번 사태는 2007년의 ‘루보 사태’와 닮음꼴이다. 당시 주가 조작 세력도 주가를 서서히 끌어올려 당국의 감시망을 피했고,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았다. 이후 한국거래소는 주가가 장기간 꾸준히 오르는 경우에도 이상급등 종목으로 지정하도록 규정을 강화했다. 그러나 주가 조작 세력은 이번에도 당국보다 한발 앞서 나갔다. 더 오래, 더 조금씩 주가를 올렸고 투자자 신원이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 레버리지를 크게 일으킬 수 있는 차액결제거래(CFD)라는 장외 파생상품의 빈틈을 악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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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는 2일 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와 관계 임원 회의를 열고 주가 조작 혐의 사건을 신속히 조사해 관련자들의 수법, 공모 여부를 명백하게 밝히고 차액결제거래(CFD)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철저하게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또 나와 사기극을 펼치지 않도록 제대로 정비하길 바란다. 영화 '작전'의 영어 제목도 'The Scam(신용 사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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