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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잇수다]유쾌한 반란, 당당한 그녀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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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kg, 24K 금으로 도금한 작은 청동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데 95년의 시간이 걸렸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주인공 양쯔충(양자경) [사진=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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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양쯔충(양자경)은 아시아 여성 최초로 이 상의 주인공이 됐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자 양쯔충은 NYT(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나에 대한 관심을 여성 차별과 불평등 문제로 돌려달라”고 말했다. 앞서 수상소감에서도 “여성분들에게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은 절대 믿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고 당부한 그는 중년 여성, 그리고 외국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오스카를 거머쥐며 할리우드의 유리천장을 깨보였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이념으로 세워진 나라지만 할리우드의 여성 차별은 뿌리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연구팀이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연간 흥행 순위 톱 100위에 오른 영화 700여 편을 분석한 결과 출연 배우의 남녀 성별 비율은 2.3대1 수준으로 조사됐다. 대사가 한 줄이라도 있는 총 3만835개의 배역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30.2%에 불과했다. 지난해 전 세계 박스오피스 10편 가운데 45세 이상 중년 여배우가 주연급으로 출연한 영화는 블랙팬서가 유일했다.

한국영화는 더 심각하다. 지난해 흥행 영화 10위권 작품 중 여성이 주연 또는 공동주연으로 출연한 작품은 3편, 45세 이상 중년 여배우가 주연급으로 출연한 영화는 한 편도 없었다. 스크린에서 중년 여성은 여전히 엄마, 그리고 아내로 등장하는 수동적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 실정이다. 고예산 영화 대부분이 남성 주연 범죄, 액션 영화가 차지하고, 코로나19 여파로 영화 산업이 양극화된 것도 여성 주연 영화의 입지가 크게 줄어든 한 원인이다.


최근 인터뷰로 만난 배우 문희경 씨는 중년 여성의 고민과 꿈을 그린 창작뮤지컬 ‘다시, 봄’으로 오랜만에 무대에 서지만 우리 나이에 작품을 만나기 참 힘들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드라마는 아내, 엄마 역할이 많은 반면, 영화나 연극, 뮤지컬은 중년 여배우가 맡는 배역에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행정안전부가 2021년 발표한 주민등록 연령별 인구통계에 따르면 4050세대는 전체 연령의 32.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문화예술관람률에서도 40대와 50대는 각각 89.0%, 79.4%로 지난 조사 대비 꾸준한 상승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들이 공감하고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다시, 봄’을 제작한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장은 “현재 40~50대가 가진 문화적 욕구는 늘어나고 있지만, 그들이 볼만한 콘텐츠는 충분하지 않아 작품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에 앞서 유럽과 할리우드에서도 중년 여성의 사랑과 우정, 고민을 다룬 다양한 작품이 제작돼 호평받았다. 최근 5년간 골든글로브와 에미상에는 메릴 스트리프, 패트리샤 클락슨 등 중년 여배우들이 조연상 후보에 올라 건재를 과시했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저서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도 마찬가지로 그 차별이 본성에서 비롯되는 믿음으로 합리화됐다. 아직까지 현대사회는 연령에 따른 불평등한 대우를 차별로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성이니까’. 그 말은 합리적 규칙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중년 여배우란 단어 속엔 성차별과 연령차별의 시선이 숨어있었다. 그 오랜 차별의 굴레를 벗어나, 단단한 실력으로 무장한 그녀들이 무대와 스크린을 넘어 당당한 사회의 주인공으로 도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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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예잇수다(藝It수다)는 예술에 대한 수다의 줄임말로 음악·미술·공연 등 예술 전반의 이슈와 트렌드를 주제로 한 칼럼입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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