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파블로 네루다' 시신 연구 결과
치아에서 독성 박테리아 DNA 발견
시신 DNA와 비교해 보니 분해도 '동일'
"사망 때 시신 내부에 독성 박테리아 DNA 존재"
연구팀 "확실한 증거는 아냐, 추가 연구 필요"

"시가 내게로 왔다". 197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파블로 네루다의 대표작이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이자 혁명가였다. 그런데 1973년 암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진 그가 실은 독살당했다는 의혹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사후 50년이 지난 그의 정확한 사인을 밝혀지고 있는데, 배경에는 첨단 유전자 과학이 있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는 22일(현지시간) 네루다의 유족들이 지난 13일 칠레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까지 진행된 유전자 분석 결과 독살의 증거를 찾았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네루다는 1973년 9월23일 전립선암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일부에선 타살 의혹을 제기했었다.

유족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네루다의 치아에서 치명적인 보튤리눔 독소를 생산해 낼 수 있는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눔 박테리아의 DNA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강제 주사에 의해 주입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실제 이론적으로는 사람이 죽을 때 혈액속 병원균이 치아의 뿌리에 있는 혈관에 보존될 수 있다. 사실 네루다의 독살설은 끊이지 않았었다. 2011년엔 네루다의 운전사였던 마누엘 아라야가 네루다가 죽기 몇시간 전에 예정에 없던 주사를 맞았다며 독살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칠레 공산당이 네루다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독재 정권에 의해 독살됐다는 의혹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결국 칠레 법원이 네루다의 유해를 발굴해 국제 전문가들로 하여금 분석해 진상을 파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2013년 비소(arsenic) 등 약 2000여종의 화학적 독물의 잔존 여부를 분석했지만 찾아내진 못했다. 다만 생물독에 대한 조사는 없었다.

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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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그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두 번째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2년 후 2015년 덴마크 코펜하겐대, 맥매스터대 등으로 구성된 연구팀이 투입됐다. 이 연구팀은 결국 네루다의 치아에서 생물독인 보툴리눔 독소(botulinum toxin)를 생산하는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눔 박테리아의 DNA 조각을 발견해 내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그후 이 박테리아 DNA 조각이 사망 당시부터 시신 속에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매장 후 토양에서 유입돼 오염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5일 이 연구팀의 보고서가 판사에게 제출됐다. 법원의 비공개 지침에 따라 아직 보고서의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연구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네이처를 통해 그동안 발달한 첨단 관련 기술들을 이용해 새로운 증거를 찾아냈다고 증언했다. 연구팀은 샷건 메타게놈 시퀀싱( shotgun metagenomic sequencing)이라는 첨단 기술을 사용해 박테리아의 DNA, 네루다의 DNA, 구강내에서 발견된 다른 박테리아의 DNA를 각각 분석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분해 정도를 분석했다. 이 결과 연구팀은 보툴리늄 박테리아의 DNA와 네루다의 DNA의 분해 정도가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네루다의 시신에서 발견된 보툴리눔 박테리아가 사망 당시부터 몸 속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보툴리눔 균주

보툴리눔 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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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구팀은 여전히 '독살'이라는 최종 결론에 신중한 상태다.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눔 박테리아 종류가 보툴리눔 독소를 생산해내지만 캔 속에 잘못 보관돼 부패된 음식물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그가 주사를 맞은 게 아니라 사망 직전 먹은 음식물이 부패하면서 생겨났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DNA 분해 정도를 비교하는 것이 사망 전 또는 사망 후 박테리아 유입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인정하고 있다.


연구팀은 추가 연구를 원하고 있다. 연구팀의 헨드릭 포이나르 맥매스터대 교수는 "우리는 심하게 마모된 일부분의 유전자만 갖고서 연구를 했다"면서 "보툴리눔 독소를 생산할 수 있는 종류의 박테리아의 유전자 조각을 확인했지만 독소 자체를 찾지는 못했다. 모든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눔 박테리아 변종들이 독소를 생산하지는 않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독소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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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네루다는 1904년 생으로 어릴 때부터 천재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의사 출신 혁명가 체게바라와 동시대 인물이다. 지식인들이 사회 변혁에 적극적이었던 당시 남아메리카 상황을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다. 마드리드 영사로 재임하며 스페인 내전을 겪은 후 공산당에 입당해 반파시즘 투쟁에 몰두했다. 칠레의 우파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다 망명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대통령이 될 기회도 있었지만 1969년 동료였던 살바도르 아옌데를 추대했다.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3년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자 병상에서 항의하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왔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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