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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날엔]분노의 창당, 초호화후보 그러나 총선폭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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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민국당, 총선 급조 신당 흑역사
김윤환 이수성 조순 등 정치거물 참여
세대교체 역행 비판, 유권자 외면으로

[정치 그날엔]분노의 창당, 초호화후보 그러나 총선폭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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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합당의 기운이 형성된다면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는 분당의 기운이 샘솟는다. 역대 선거에서 이러한 정치 문법이 형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선거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대선은 단 한 명의 후보가 나서는 선거다. 반면 총선은 전국 253개 지역구 국회의원과 47명의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선거다. 수많은 후보가 출마하고, 그들이 속한 정당도 다양하다.

대선에서 제3당의 설 자리는 비좁을 수밖에 없다. 당선을 목표로 한다면 갈 길은 멀고 험하다. 반면 총선은 다르다. 제3당, 제4당도 얼마든지 의석을 낼 수 있고, 개별 지역구에서 이변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정치는 조직과 당력도 중요하지만 개인기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른바 인물이 좋으면 승부는 해볼만하다는 얘기다.


2020년 12월 12일 국회의사당의 모습이 침묵에 쌓여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2020년 12월 12일 국회의사당의 모습이 침묵에 쌓여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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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의미에서 총선 제3당의 연구 사례로 거론되는 정당은 2000년 제16대 총선에 나섰던 민주국민당(민국당)이다. 민국당은 2000년 3월 8일 창당했다. 4월13일 열리는 제16대 총선 한 달 전에 창당한 신생 정당이다.


정당의 역사는 짧지만 드림팀에 가까운 라인업으로 총선에 임했다. 민국당에 참여했던 정치인들의 면면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민선 서울시장을 지낸 조순 전 국무총리가 참여했다. 킹메이커의 원조인 ‘허주’ 김윤환 전 신한국당 대표도 참여했다. 이수성 전 국무총리, 한승수 전 경제부총리, 이기택 전 민주당 대표, 문정수 전 부산시장,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김상현 전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박찬종 전 의원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정치인들이 합류했다.


정치인 김윤환, 이수성 등은 이름값으로만 보면 국회의원 낙선을 걱정할 인물이 아니다. 한 사람은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대통령 물망에 오른 사람이다. 대구·경북(TK) 맹주로 불렸던 이들까지 민국당에 참여하면서 기세는 대단했다.


민국당 사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총선을 앞두고 제3신당 창당을 꿈꾸는 이들이 참고해야 할 여러 교훈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양당에 대항에서 제3신당을 꾸리고자 할 때 2000년 민국당보다 더 화려하고 탄탄한 정치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좌에서 우까지, 영남에서 호남까지 지역과 이념을 망라한 슈퍼스타들이 민국당에 함께 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2022년 6월 1일 오후 강원 춘천시 호반체육관에서 개표사무원들이 투표함을 살피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2022년 6월 1일 오후 강원 춘천시 호반체육관에서 개표사무원들이 투표함을 살피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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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정당이라면 당연히 총선 돌풍을 일으키고 기존의 정치 질서를 흔드는 거대한 흐름을 일으켜야 마땅한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민국당의 성적표는 초라한 정도가 아니라 참담했다. 춘천에서 한승수 전 부총리가 당선되면서 유일한 지역구 당선자가 됐다. 한승수 민국당 후보의 득표율은 28.7%에 불과했다.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과의 치열한 3파전 끝에 민국당이 승리를 거뒀다.


한승수 후보가 그나마 체면을 살렸지만, 다른 정치 거물들은 하나 같이 쓰러졌다. 경북 칠곡에 출마한 이수성 민국당 후보는 한나라당에 일격을 당했다. 구미시에 출마한 TK 맹주 김윤환 민국당 후보도 한나라당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민국당이 창당을 준비하고 새로운 정치 흐름을 만들고자 했을 때 이러한 총선 성적표를 낼 것으로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현실 정치의 벽이 높을 수는 있겠지만, 참여한 인원들의 면면을 고려할 때 생환(生還)하는 정치인들이 제법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민국당이 총선 급조 정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선거구도와 맞물려 있다. 민국당이 도전했던 제16대 총선은 밀레니엄(2000년) 개막과 맞물려 정치권에 ‘바꿔 열풍’이 몰아쳤던 선거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 불붙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변화의 흐름에 맞춰 세대교체 공천에 공을 들였다. 한나라당, 민주당의 정치 거물들은 총선 탈락의 충격에 휩싸였다. 이들 정당에서 이뤄진 세대교체를 정치 개혁의 일환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제20대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2022년 3월 8일 서울 청운효자동 자치회관에 마련된 청운효자동 제3투표소에서 종로구청 관계자가 기표 도장을 들어보이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제20대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2022년 3월 8일 서울 청운효자동 자치회관에 마련된 청운효자동 제3투표소에서 종로구청 관계자가 기표 도장을 들어보이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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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당내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정적 제거의 일환으로 공천 국면을 활용하기도 했다. 정치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거물들이 당 지도부의 이러한 행태를 모를 리 없었다. 공천 탈락에 대한 응징과 분노를 토대로 신당 창당 작업에 나섰고, 동병상련의 아픔을 지닌 정치인들이 대거 합류했다.


그렇게 정당의 볼륨은 키웠는데, 당의 특성은 잃어버린 상황이 되고 말았다. 보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보나 중도도 아니고, 새정치도 아니고, 잡탕 정당이 돼 버린 것이다.


게다가 세대교체의 흐름과 역행하는 정당의 상징이 돼 버렸으니 유권자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는 어려웠다. 정치인의 이름값 하나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입장에서는 민국당이라는 존재 때문에 ‘구태 정당’ 이미지를 탈색하는 효과도 있었다.


민국당은 의지와 무관하게 다른 정당의 이미지 세탁의 용도로 활용됐다는 얘기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불꽃처럼 타오르던 민국당의 불씨는 그렇게 조용히 꺼졌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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