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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人사이드]일왕 앞에서 일장기 불태웠던 오키나와인, 치바나 쇼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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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가요·일장기 게양 반대
김학순 할머니 이야기꺼내며 눈물도

편집자주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이름은 들어봤는데 이 사람이 누군가 싶은 인사들이 많습니다. 일본 뉴스를 담당하는 국제부 기자가 한 주 동안 화제가 됐던 일본 인사, 그리고 그에 엮인 이야기를 함께 소개합니다.

[아시아경제 전진영 기자] 일본 오키나와는 따뜻한 날씨와 맑은 바다로 인기가 많은 관광지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경치 이면에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섬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흔이 여전히 깊게 남아있습니다. 스스로 일본인임을 강하게 거부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죠.


오늘 소개해드릴 치바나 쇼이치란 사람도 그런 오키나와 주민 중 한 사람입니다. 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부르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사회 운동가이자 승려로 아직 아물지 못한 오키나와의 실상을 제대로 알린 인물로 알려져있죠. 그는 과거 1987년, 오키나와에서 열린 국제 소프트볼 대회에 게양된 일장기를 찢고 태워 체포당해 외신에 실리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치바나씨는 1948년 5월 11일, 오키나와 요미탄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고향인 요미탄손은 오키나와 전쟁 때 미군이 상륙한 곳으로, 당시 일본군의 강요와 학살로 수많은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던 지역이죠.


오키나와에서 만난 치바나 쇼이치 승려. 뒤의 비석은 오키나와 주민들이 집단 자결한 치비치리가마 위령비다.

오키나와에서 만난 치바나 쇼이치 승려. 뒤의 비석은 오키나와 주민들이 집단 자결한 치비치리가마 위령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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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는 흔히 일본의 일부로만 알려져있지만, 실제 일본에 완전히 편입된 것은 19세기 후반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아예 별개의 나라였죠. 특히 일본은 류큐 왕국을 강제로 점령한 이후 문화가 저급하고 미개하다며 이들을 일본인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강압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태평양 전쟁 때는 당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황국신민화 정책이 강요됐죠. 특히 일본 본토와 거리가 멀었던 오키나와에서는 더 강도 높은 사상주입이 이뤄졌습니다. 동화 정책으로 인해 모든 곳에서 일장기가 나부끼게 됐고, 학교에서는 "천황을 위해 싸우고 미군에게 잡히느니 자결하라"는 식의 끔찍한 교육이 이뤄졌습니다.

결국 2차대전 말기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 황국신민화 정책에 휘말려 10만명 이상 학살당했습니다. 집단 자결이 일어난 치비치리 동굴의 경우 딸이 먼저 어머니에게 “나를 죽여달라”고 애원하고, 동굴은 자결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으로 가득 차는 등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미군에 잡히는 것을 우려해 수류탄으로 자결하거나, 심지어 서로 이를 부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치비치리가마 입구. 안에는 여전히 희생자 유골 등이 남아있기 때문에 관계자 이외의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이 놓여 있다.

치비치리가마 입구. 안에는 여전히 희생자 유골 등이 남아있기 때문에 관계자 이외의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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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전쟁이 예상했던 기간보다 길어지면서 일본군은 동굴에 숨어있던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내 본인들이 미군을 피하기 위해 썼고, 주민 식량도 빼앗습니다. 식량을 둘러싸고 일본군과 주민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 일본군이 주민들을 살해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간첩 혐의를 씌워 죽이기까지 합니다. 폭격 등에 의한 사상자도 있었지만, 일본군에 의한 폭력으로 발생한 희생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죠.


이러한 역사적 상흔이 채 낫기도 전에 오키나와는 1975년에 갑자기 일본으로 반환됩니다. 당시 미군과 일본이 맺은 조약에서 오키나와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미군 기지를 아예 오키나와에서 내보내달라고 했지만, 일본은 어차피 본토에 기지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이를 남기게 된 것이죠. 이 때문에 오키나와에서는 졸업식 등 공식 행사에서 기미가요를 부르거나 일장기를 부르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반환 이후인 1987년, 오키나와에서는 국제 소프트볼 대회가 열렸습니다. 일왕 부부가 참석한다는 이유로 주최 측은 기미가요를 틀고 일장기를 게양할 계획이었으나,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일장기 게양은 하지 않기로 합니다.


그리고 행사 당일. 약속과 다르게 경기장에는 기미가요와 함께 일장기가 정 중앙에 가장 높이 올라가게 됩니다. 분노한 치바나씨는 건물을 타고 올라가 일장기를 찢고 불태워버립니다. 이에 경기장에서는 본토에서 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과 오키나와 사람들로 싸움이 나기까지 하죠. 그는 체포당했지만 “일장기를 걸고 싸우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느냐”고 당당히 항변합니다. 이후에도 치바나씨는 오키나와에서 반전운동을 펼치고, 본토와의 차별 철폐에 뛰어듭니다.


이번 출장에서 저는 치바나씨의 안내로 주민들이 집단자결한 치비치리가마를 방문했습니다. 안내가 끝난 뒤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는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인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구조적 차별 안에 있다"며 의외의 인물을 거론했습니다. 바로 위안부 강제 동원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입니다.


치바나씨는 "김 할머니가 자신이 일장기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했을 때, 내가 일장기를 태운 것이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많은 감정이 교차했는데요.


치바나씨와 오키나와의 역사를 길게 말씀드린 이유는, 오키나와의 이러한 역사가 제주도 4·3사건과 비슷하다는 전문가 분석이 많기 때문입니다. 국가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폭력,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본토와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오키나와에는 최근 다시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미군 신기지가 건설되고, 자위대를 위한 시설과 무기고가 새로 생길 예정이며, 하늘에는 중국 정찰기가 출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치바나씨는 "전쟁에 대한 경험은 세월이 지나가면서 희미해진다"며 "전쟁은 아무 이익이 없다는 것을 모두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각국의 내전 등 21세기에도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민간인이 희생당하는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국가란 무엇인지, 그리고 전쟁은 왜 반복돼서는 안 되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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