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2세, 장쩌민 등 역사적 지도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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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3회 우승이란 역사상 유일무이한 기록을 갖고 있던 브라질의 '축구황제' 펠레가 2023년을 눈앞에 두고 사망하면서 전세계적인 추모 분위기가 일고 있다. 그와 함께 올해는 역사를 크게 움직였던 국가지도자들도 큰 족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축구황제 펠레(2022년 12월29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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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불리는 펠레는 1940년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소도시인 트리스 코라송이스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15세 때인 1956년, 명문 산투스FC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고 프로축구 선수가 되면서 그의 전설은 시작됐다.


곧이어 브라질 국가대표로 선발돼 브라질 대표팀 최연소(16세 259일) A매치 득점을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후 17세에 참가한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안기며 세계적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1962년 칠레,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을 거둬 역대 월드컵에서 선수로서 3차례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펠레는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며칠 앞둔 지난달 14일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내가 브라질 국가대표 셔츠(유니폼)를 입는 동안 방패(축구협회 문장) 위에 별 세 개를 올렸다"면서 "지금 셔츠에는 5개가 있는데, 빨리 6개의 별이 달린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오른쪽 결장에 암 종양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았고, 이후 병원을 오가며 화학치료를 받다가, 지난 11월29일 심부전증과 전신 부종, 정신 착란 증상 등으로 재입원했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상파울루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 치료를 이어온 가운데, 최근 암의 진행이 더 진행되면서 상태가 위독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 장쩌민 전 중국 주석(2022년 11월30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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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세 일기로 사망한 장쩌민 전 국가 주석은 중국 제3세대 지도자로, 중국의 경제 발전을 지휘한 인물이다. 그의 임기 중 중국은 매해 평균 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전환했다. 재임 기간 중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 수교를 맺고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가입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따르며 세계와의 교역을 확대하는 데 주력했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이 중국을 최대 개발도상국의 반열에 끌어올린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중국 국가주석을 역임한 장 전 주석은 상하이 당서기 시절인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무력 진압하며 덩샤오핑의 신뢰를 얻어 중국 정치 중앙 무대에 들어왔다. 그는 중국 공산당 3대 정치 계파 중 하나인 ‘상하이방’을 만들고 은퇴 이후에도 상하이방 원로로 중국 정계에 관여해왔다. 하지만 시진핑 국가 주석이 집권하면서 ‘반부패 칼날’이 상하이방을 향했고 장 전 주석의 정치 기반은 흔들렸다. 상하이방의 ‘버팀목’이었던 장 전 주석의 사망으로 상하이방은 더욱 빠른 쇠락의 길을 걷는 한편 시 주석 1인 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외신들은 장 전 주석의 사망 시점을 두고 중국이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경기가 악화한 상황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중국 정부는 고강도 방역 반대 시위, 이른바 ‘백지 시위’가 이어지자 이달 들어 방역 조치를 대폭 완화했다. 이후 빠르게 감염이 확산하면서 전 세계적인 재확산 우려가 커진 상태다. 혹독한 방역 조치의 여파로 중국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5.5%로 세워뒀으나 세계은행(WB) 등에서는 중국이 실제 올해 2%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2022년 9월8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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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즉위 70년 만인 96세에 사망한 영국의 최장수 군주다. 25세의 젊은 나이로 왕위에 오른 그는 제2차 세계대전과 영국 식민지의 독립, 냉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 역사 속 격변의 시기를 직접 겪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거쳐 간 영국 총리만 윈스턴 처칠 전 총리부터 리즈 트러스 전 총리까지 총 15명이다.


처칠 전 총리 서거 이후 57년 만에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국장에는 세계 주요국 정상과 왕족 500명을 포함한 2000여명이 참석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망 소식에 영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추모 분위기가 이어졌다. 런던에는 수백만 명이 장례 행렬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왕위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들 찰스 3세가 계승했다. 그는 여왕 서거 이틀 만인 지난 9월 10일 즉위식에서 "국왕의 의무와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평생 봉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영국 최고령 국왕 즉위’ 기록을 세운 그는 내년 5월 6일 공식 대관식을 치를 예정이다.


찰스 3세는 ‘군주제 회의론’ 속에서 기존 영연방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과제로 떠안게 됐다. 영 연방의 중심이 됐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역할을 그가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나온다. 특히 바베이도스 등 카리브해 국가 중심으로 영연방 탈퇴 움직임이 나오고 호주, 뉴질랜드, 자메이카 등에서도 공화국 전환 논의가 진행되는 만큼 그의 대응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찰스 3세는 정치·사회 이슈와 관련한 입장을 내놓는 것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조용한 리더십’을 보여온 엘리자베스 2세와는 달리 직설적이고 적극적인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그는 즉위 후 처음 내놓은 성탄 메시지를 통해 생활비 증가, 의료진 헌신과 같은 사회 이슈를 직접 언급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2022년 8월30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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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1990년대 냉전 종식이란 역사적 큰 분수령의 중심에 서있던 지도자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의 사망 전후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중국과 러시아, 미국간 패권경쟁에 따른 신냉전 구도의 본격적인 형성되면서 더욱 그의 생애가 주목받았다.


집권 이전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초고속 출세로 지도자가 된 유능한 관료로 유명했다. 그는 당대 명문이던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법학부에 진학한 직후인 1952년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이후 우수한 중앙관료로 인정받아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는 49세 때인 1980년, 최연소로 소련 공산당 최고 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 정치국원이 됐고 이후 5년 만에 최고 지도자인 소련 서기장에 올랐다.


그는 집권 이후 경제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미국과의 체제경쟁을 끝내기 위해 서방국가들과 적극적인 외교에 나섰다. 1989년 2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종결시키고, 그해 11월 발생한 베를린 장벽 붕괴를 수용해 동·서독의 통일이 이뤄졌다. 1990년에는 미국과의 군축협정을 이끌어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집권 이후 심화된 경제난을 막진 못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그의 집권 이후 소련 경제는 40% 이상 위축됐으며, 경제난이 발생한 주된 원인은 소련의 재정과 경제를 지탱하던 국제유가의 폭락이었다. 국제유가는 그가 집권한 직후인 1985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70% 가까이 급락했다.


자원에 의존하는 러시아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없이 실시된 개혁(페레스트로이카)·개방(글라스노스트) 정책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기존 공산주의체제하의 계획경제체제에서 자본주의체제로 이행한 국영기업들은 공산당에 의해 억눌려있던 주요 생필품과 제품가격을 일제히 현실화한다는 명목으로 끌어올렸다. 소련 당국도 재정압박이 심화되자 대규모로 화폐량을 늘리면서 경제 악순환이 이어졌다.


결국 소련의 해체가 진행되던 1991년 8월, 보수파의 쿠데타로 권력기반을 상실한 고르바초프는 4개월 뒤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1996년 다시 대선에 출마해 재기를 노렸지만, 불과 0.5%의 지지율을 받았으며 이후 정계활동은 중단했다.


이후 러시아의 주요 진보매체인 노바야가제타를 창간하고, 옛 소련시절 사회과학연구소를 인수해 고르바초프 재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이사장으로 활동해왔다.

◆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2022년 7월8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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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67세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역대 최장수 총리로 일본 우익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지난 7월 8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나라현에서 선거 유세를 하던 중 사제 산탄총을 맞고 사망했다. 8년 9개월, 최장기 집권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열도는 충격에 빠졌다.


아베 전 총리는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를 이끌며 개헌과 방위력 강화를 필생의 과업으로 추진해왔다. 총리 재임 시절에는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던 일본의 장기 불황에서 탈피하기 위해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대규모 금융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2020년 지병 악화를 이유로 총리에서 물러났지만, 이후에도 자민당의 상왕 역할을 하며 정계를 주도했다.


그러나 그의 장기 집권으로 일본이 급속도로 우경화됐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한일관계는 아베 전 총리 집권으로 급격히 냉각됐다. 아베 전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공물을 보내며 한국과 갈등을 빚었고, 한국 대법원이 내린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배상 판결 보복 차원에서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했다.


그의 사망 여파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정권을 넘겨받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지지율은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를지 여부를 결정하면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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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리스크’도 생겼다.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한 야마가미 데쓰야는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가 통일교 신자가 된 뒤 거액을 헌금해 가정이 파산했다"며 이에 통일교에 원한을 갖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통일교 관련 단체에 자금을 지원한 아키바 겐야 부흥상 등이 논란이 되면서 지지율은 역대 최저로 곤두박질쳤다. 기시다 총리는 결국 지난 27일 아키바 부흥상을 내각에서 교체해야 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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