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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개방 7개월…관람객 줄고, 활용 길 막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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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동안 약 274만명 방문…개방 초보다 관심 낮아져
'아트 콤플렉스' 전환 사실상 어려워져, 명분 쌓기 급급
윤석열 대통령 영빈관 활용 잦아져…로드맵 이르면 연말 발표

청와대 개방 7개월…관람객 줄고, 활용 길 막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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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본관은 격조 높은 팔작(八作)지붕이다. 삼각형 맞배 모양의 용마루와 활시위처럼 끝이 올라간 처마로 아름다움을 더한다. 자연스러운 선과 굴곡을 강조한 우리 건축의 멋이다. 지난 21일처럼 함박눈이 소복이 쌓이면 단아한 정취까지 품는다. 순결과 정의를 회복하고 의연한 자세로 하늘을 마주한다. 이제는 국민도 대면한다. 출입이 엄금됐던 옛날 궁궐이 아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드는 열린 공간이다. 지난 5월 개방돼 이달 19일까지 약 7개월 동안 관람객 274만6868명이 찾았다.


여유로워진 관람 환경, 속 타는 정부

인파를 이끈 동력은 단순히 아름다운 조경이나 건축물로 요약할 수 없다. 역대 대통령들 기거로 하나같이 역사의 영욕이 깃들었다. 한동안 권력이란 장막에 가려 호기심과 흥미도 자아낸다. 관람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문화재청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이 지난 6월 15세 이상 관람객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89.1%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날도 아이를 동반한 한 엄마는 "대통령들의 삶과 역사를 엿볼 수 있어 신기하고 흥미롭다"고 했다. 아내와 함께 찾은 한 중년 남성도 "뉴스에서나 보던 공간을 직접 보게 돼 감개무량하다"라며 "조망도 설경이 더해져 한 폭의 동양화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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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풀 꺾인 국민적 관심도 만족도가 높은 배경이 됐다. 본관 앞에 길게 늘어섰던 대기 줄은 사라진 지 오래. 발 디딜 틈 없던 경내 산책로도 뻥 뚫려 있다. 개방 초 불거진 훼손 우려가 무색할 만큼 한산하다. 복수 관람객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구경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안내원은 "두 달 전부터는 주말에도 붐비지 않는다"라며 "관람 예약 시스템 없이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안내원은 "관람객 물음에 상세히 답해줄 만큼 신경 쓸 일이 줄었다"라며 "안정적 단계에 접어든 듯하다"고 했다.


정부에 반가운 일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인파를 전제로 복합문화예술 공간화를 추진해왔다. 문화·예술을 접목한 이른바 '아트 콤플렉스'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새로운 청와대는 새 정부의 핵심 브랜드이자 상징자산"이라며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처럼 공간을 재구성하겠다"고 밝혔다.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다양한 콘텐츠 배치에 의지한 재방문 등 장기적 인기몰이와 문화·예술로의 관심 확장이다. 당장은 전자가 시급하다. 발길을 다시 유도할 만한 촉매제가 마땅치 않다. 호기롭게 예고한 대형 행사는 차일피일 미루고 미봉책을 내놓기에 급급하다.


불발된 전시 계획…구색 맞추기 급급

문체부는 내달 16일까지 춘추관 2층에서 문학 특별전시 '이상, 염상섭, 현진건, 윤동주, 청와대를 거닐다'를 한다. 본관 관람객 스무 명에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라는 답만 돌아왔다. 당연한 결과였다. 상당수가 입장하는 정문에 입간판, 포스터, 현수막 등이 배치되지 않았다. 주요 건물이나 산책로도 마찬가지. 춘추관 주위에만 홍보물이 집중돼 있었다. 지난 9월19일 성황리에 끝난 첫 번째 전시 '장애 예술인 특별전' 때와 사뭇 달랐다. 당시 춘추관 2층은 스무날 동안 관람객 7만여 명이 다녀갔다. 출품작 예순 점 가운데 스물다섯 점이 팔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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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전시는 이와 성격이 판이하다. 직관적 감상이 불가해 외국인이나 어린이·청소년에게 불친절하다. 근현대 문학에 대한 탄탄한 정보 없이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시선을 사로잡는 희귀 자료도 이상과 박태원, 김소운이 1934∼1935년 무렵 함께 찍은 사진 정도다. 문체부와 국립한국문학관은 조명하는 문인들이 청와대 인근 서촌을 주요 근거지로 삼고 대표작을 남긴 점에 착안해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에서 관련한 설명은 부재했고, 전시 설명 문구도 '체부동의 염상섭, 부암동의 현진건, 통인동의 이상, 누상동의 윤동주' 정도로 간소했다. 익명을 요구한 내부 관계자는 "청와대 일대의 과거 사진을 배치해 색다른 공간감을 부여하는 등 이 지역과 문인·작품의 연결고리를 한층 세밀하게 다뤄야 했다"라며 아쉬워했다. 다른 관계자도 "국립한국문학관이 보유한 자료들을 단순히 나열해 놓은 수준에 불과하다"라며 혀를 찼다.


입체적 구성은 애초 불가능했다. 춘추관 2층 크기(450㎡)가 협소해서다. 문체부가 전시 공간으로 내정한 세종실(335㎡)·충무실(355㎡)·인왕실(216㎡)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 미술관 용도로 건축되지 않아 내부 변경도 불가피하다. 항온·항습 기능을 갖추고 별도 조명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원형 훼손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다양한 장애에 직면한 문체부는 애초 발표한 계획을 이행하지 못했다. 지난 가을 개최하려 했던 '청와대 컬렉션 특별전'이 대표적인 예다. 허백련·장우성·이상범·김기창·서세옥 등 한국화 거장 스물네 명의 작품 약 서른 점을 전시하려 했으나 갖가지 이유로 무산됐다. 내부 관계자는 "주요 외빈을 위한 행사장으로 활용됐던 영빈관을 특별 기획전시장으로 꾸미려 했으나 현재로선 추진하기 어려울 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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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빈관 찾는 대통령…미술관 계획 어려워져

이날 관람객들은 영빈관에 입장할 수 없었다.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열려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라서 관계자들이 보안 등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국빈 만찬을 시작으로 22일까지 열여드레 동안 사흘에 한 번꼴로 영빈관을 찾았다. 지난 8일 카타르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단을 초청해 만찬을 베풀었고, 지난 15일 국민 패널 100명과 함께 국정과제 점검 회의에 참여했다. 청년 간담회(20일), 미래 과학자와의 대화(22일) 등 대규모 공식 행사도 열었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인근에 영빈관을 신축하려던 계획이 무산된 데다 최근 직접 소통 행보를 확대하는 국면과 맞물려 사용 빈도가 높아졌다.


영빈관은 2층 구조의 석조 건물이다. 1978년 건립돼 낡았으나 전임 정부에서 보수해 시설이 많이 개선됐다. 내부 홀 규모는 청와대 건물 가운데 가장 큰 496㎡. 층고도 10m에 달해 국격에 맞는 내외빈 행사를 치르기에 적합하다. 윤 대통령은 비공식 회의장으로 쓰였던 상춘재도 자주 방문한다. 지난 6일 푹 주석에게 차담을 베풀었고, 지난 9일에는 경제단체장들을 초청해 비공식 만찬을 열었다. 대통령실은 "역사와 전통의 계승과 실용적 공간의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라며 "국격에 걸맞은 행사 진행을 위해 영빈관 등을 실용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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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빈관을 기획전시장으로 바꾸려던 문체부는 윤 대통령의 달라진 행보에 난감해한다.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말을 아꼈다. 한 외부 관계자는 "박보균 장관이 예고한 '청와대 컬렉션 특별전'이나 '이건희 컬렉션'은 물 건너갔다"라며 "다른 건물들도 원형 훼손 방지와 기존 성격을 고려해 관람 구역과 동선을 지정하고 공개하는 만큼 미술관이나 '대통령 역사문화 공간'으로 변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청와대 밖에 있고 2층만 활용할 수 있는 춘추관만으로는 다양한 전시를 펼치기에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문체부는 내년도 미술품 전시 예산으로 36억원을 책정했다. K-뮤직 확산(64억원)이나 사랑채 개보수 및 안내센터 운영(60억원)에 한참 못 미친다.


관리에 적합한 기관은…

정부는 지난 7월 청와대 관리·활용자문단을 발족하고, 단장으로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을 위촉했다. 역사·문화·예술·콘텐츠·관광·조경·건축 등 전문가들의 회의 결과와 현장 검증, 국민 의견을 바탕으로 이르면 연말에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이다. 문체부가 예고한 미술관 활용 방안은 사실상 우선 순위에서 배제됐다. 광복 뒤 정부의 발자취가 서린 역사적 장소인 만큼 주요 건물들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활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전해진다. 오히려 문화재청이 발주하고 한국건축역사학회가 진행한 '경복궁 후원 기초조사 연구용역'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면 관련 조사에 무게가 실릴 형국이다. 청와대 터는 고려 숙종 때 이궁(수도 밖에 있던 별궁)으로 번성하다가 충렬왕 때 삼경제(三京制)가 폐지되면서 역사 속에서 한동안 사라졌다. 조선이 건국하고 경복궁이 건설된 뒤에는 후원으로 조성돼 왕실 휴식처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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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청와대를 관리할 주체도 로드맵을 통해 결정된다. 박보균 장관은 "국민에게 개방한 1단계에서는 문화재청과 청와대 관리비서실이 함께 했으나,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드는 2단계에선 문체부가 주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새로운 기구를 두지 않고 민간 전문가들과 협력 체계를 구축해 최고의 전시 공간으로 꾸미겠다는 복안이었다. 복수 관계자들은 "전시 공간으로 활용이 어려워진 만큼 노하우가 쌓였을 문화재청에서 계속 관리하는 편이 낫다"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청와대는 각종 건물은 물론 미적 재산인 정원도 매우 큰 가치를 지닌다"라며 "관람객이 계속 방문하는 이상 침류각·오운정·칠궁·석조여래좌상 등 문화재·건축물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 군 등 관리에 꾸준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른 관계자는 "설사 문체부가 관리를 주도하더라도 문화재청에 자주 손을 내밀 것"이라며 "당장 성과보다 장기적 과제에 주안점을 두고 운영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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