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캐머런 감독 '아바타: 물의 길' 나비족 수난 통해 문명·야만 본질 제시
나라 만들지 않고 공존한 인디언도 조명…새로운 욕망·집착은 포경으로 표현

[슬레이트]판도라에서 되풀이되는 인디언·고래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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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물의 길'은 비인간화된 문명사회에 대한 경고다. 인류가 자행해온 도륙·파괴의 역사를 판도라 행성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 울창한 숲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고, 나비족은 총탄에 맞아 절명한다. 인간들은 동정이나 호기심을 사납게 거절한다. 새 터전을 일구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으로 여긴다. 지구에서 절종, 환경 오염, 기상 이변 등 폐해를 겪고도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승자 독식과 약육강식이 지배한 세계에 공생의 논리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애초 꽃필 수 없는 개념일지 모른다. 힘없는 자의 주창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인간들의 눈에 비친 나비족은 그저 야만인이다.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지금도 흔하게 목격되는 시선이다. 상품경제 시스템에 편입되지 않은 사람에게 '미개'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 나비족의 고통스러운 수난사

문명과 야만은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이다. 미국인의 서부 정복 역사의 경우 '프런티어' 반대쪽에서 보면 인디언의 고통스러운 수난사다. 미국인이 불모지로 여긴 땅은 인디언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었다. 불모는 백인들이 만들어낸 이름일 뿐이다. 본래 주인을 내쫓고 부족 마을을 파괴하며 미개지로 둔갑시켰다. 인디언의 생활 터전을 송두리째 뿌리 뽑은 잔악, 이것이 바로 프런티어의 본질이다.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는 인위적 산물에 얽매이지 않는다. 야만과 문명이라는 잣대에서도 자유롭다. 그래서 나비족의 유무형 가치를 온전히 들여다본다. 파괴될 위기에 직면하자 보존과 영속을 위해 가족을 데리고 바다 마을로 향한다. 멧케이나 부족이 사는 바루다. 오마티카야 부족인 설리 가족은 다른 삶의 방식과 외형, 관점, 문화 등으로 이따금 충돌한다. 큰 싸움으로 번지진 않는다. 티격태격하다가도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 부조를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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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부족들도 비슷한 관계를 형성하며 공존했다. 상대 부족을 미개지로 쫓아내는 형태로 전개된 싸움은 19세기 뒤에나 볼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거주지 경계가 모호해서 다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로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더 큰 폭력을 피하려고 맞붙었다. 폭력을 수반하는 전쟁은 잔혹한 양상으로 치닫기 십상. 하지만 그들은 고통을 야기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과 적을 모두 보호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제의(祭儀)였다. 결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요구가 인정되길 바라는 사이에 화해와 중재가 뒤따랐다. 여치헌 변호사는 저서 '인디언 마을 공화국'에서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제의적 성격의 전쟁에는 화해를 목표로 싸움을 벌인다는 역설이 숨어 있었다. 파편화된 집단이 희소한 자원을 놓고 생존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파편화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인디언 사회는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 부족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게 부족 간 전쟁의 주된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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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아바타(2009)'에 묘사된 인간의 모습은 판이하다. 새 에너지 광물인 언옵타늄을 얻기 위해 판도라 행성을 개발한다. 17~18세기에 대서양을 건너온 유럽 이주민들에게도 비슷한 목적이 있었다. 고향에는 이용할 만한 빈 땅이 거의 없었다. 남은 거라곤 산림 지역과 침수 피해로 버려진 땅 정도가 고작이었다. 농업이 주된 수입원인데 토지가 없어 날품팔이 신세를 면치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토지의 불평등한 소유로 핍박받는 게 지긋지긋해 긴 여정을 자처했다.


북아메리카에 당도한 뒤 토지 소유에 관한 생각은 바뀌었다. 주인 없는 땅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인디언 문제만 해결하면 모두 가질 수 있었다. 충분한 가능성은 이주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자신의 땅을 재산권이라는 명목으로 보장받기 위해 더 큰 폭력과 권력자의 출현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등장한 지배계급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었다.


△ 고래와 툴쿤이 전하는 충고

'아바타: 물의 길' 속 인간도 판도라 행성을 새로운 터전으로 인식하기에 이른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새롭게 부상하는 욕망과 집착을 포경(捕鯨)으로 표현한다. 고래를 꼭 닮은 툴쿤을 등장시킨다.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바다 생명체로, 머리 부위에 피부 조직의 노화를 막아주는 물질이 숨겨져 있다. 영원한 젊음과 부를 갈구하는 인간들은 너도나도 배에 올라타겠다고 줄을 선다.


고래도 과거에 비슷한 운명이었다. 추출한 기름이 돈이 되자 씨가 말랐다. 고래기름은 식물성 기름보다 점성이 낮아 다양하게 쓰였다. 섬유·금속 공장의 톱니바퀴를 부드럽게 돌아가게 했고, 양모 세척과 가죽 무두질도 수월하게 도왔다. 연기를 피우지 않고 가로등도 밝혔다. 공장이 밝아지자 업무 시간은 늘었고, 상가들도 밤까지 영업을 연장했다. 포경이 산업과 상업을 현대적 모습을 탈바꿈시키고, 나아가 자연 훼손을 촉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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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대부분은 작살을 맞아 죽는다. '작살(Harpoon)'은 '빨리 죽이다'라는 뜻의 바스크어 '알포이'에서 유래했다. 본래 뜻과 반대로 고래들은 장시간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작살이 중요한 장기를 뚫을 만큼 강력하지 않아서다. 치명상을 입히진 못하나 효과는 상당하다. 예리한 날이 나팔꽃 모양으로 벌어져 잡아당겨지면 상처는 더 깊어지고 작살은 더 깊게 박힌다. 고래는 포경선에 매달린 채로 끌려다니다 갈수록 커지는 상처와 그로 인한 과다 출혈로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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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죽음은 오늘날도 계속된다. 다양한 해양 폐기물과 오염원을 삼키면서 지용성 독극물의 저장고가 돼버렸다. 고래는 수면에 코를 내놓고 호흡해 정유 공장이나 크롬 도금 공장에서 방출돼 공기 중으로 부유하는 카드뮴, 크롬, 니켈 같은 발암 물질에도 취약하다. 그야말로 오염의 희생양이다. 자연의 순환은 때로 오염의 흐름을 역전시킨다. 버려 버린, 잊어버린 오염 물질을 고래를 먹는 인간의 몸속에 되돌려준다. 인간의 삶과 망각의 증거물이 돌고 도는 야생. 고래와 툴쿤은 심각하게 경고한다. 자신의 비극을 되새기며 변화의 가능성을 찾으라고.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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