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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낙농가·유업체…이러다 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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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原乳) 가격이 오르면서 '밀크플레이션(밀크+인플레이션)'이 가시화하고 있다. 밀크플레이션은 원유 가격이 상승하면 우유나 버터, 치즈를 재료로 만드는 빵, 커피, 아이스크림 등의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현상이다. 서민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전반적인 인구 감소와 취향의 변화 등으로 우유 소비는 매년 감소하는데, 우유 가격은 왜 오르는 걸까. 우유 가격 상승의 미스터리를 이해하려면 원유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원유 가격은 정부가 2013년 도입한 '원유가격연동제'로 결정된다. 이 제도는 낙농가의 원유 생산비 증감에 따라 조정한다. 한 번 가격이 정해지면 시장 수요와 상관없이 1년간 같은 가격이 유지된다. 이런 이유로 지난 20년간 한국 원유 가격은 72% 상승했다. 미국(11.8%)과 유럽연합(EU·19.6%)의 원유 가격 상승률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우유 소비가 줄어 해마다 10만t씩 원유가 남아도는데도 그랬다.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은 1997년 31.5㎏로 정점을 찍었다가 20여 년이 지난 지난해엔 26.6㎏로 4.9㎏ 줄었다.

보통 시장에서 제품이 안 팔리면 싸게 파는 게 정상인데, 정부가 우유를 산업 보호 차원에서 쌀처럼 매입 가격을 올려주다 보니 원유로 만든 우유와 유제품 가격이 내려가지 않고 계속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원유 가격이 너무 높아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내년부터 차등 가격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마시는 음용유(흰 우유)와 가공유(치즈·버터 등 생산에 쓰이는 우유) 가격을 다르게 책정해 음용유의 가격 인상을 막겠다는 취지다. 여기에 원유 과잉 생산이 심각할 경우 원유 가격을 낮추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낙농가에서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3년 1개월 뒤인 2026년에는 유업계에 큰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EU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이 확대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산 우유가 국내 시장을 점령할 수 있어서다. 일각에선 이미 유업계 몰락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5년 경북 대표 유업체 영남우유가 높은 원유가와 소비 부진에 따른 재고 급증으로 폐업을 결정한 바 있는데, 최근 푸르밀을 기점으로 도미노 폐업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어렸을 때 '우유를 많이 먹어야 키가 쑥쑥 큰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당시만 해도 우유 마시기를 장려했지만, 이제는 먹거리가 풍부하고 우유를 대체할 음료도 다양하다. 유업체들도 원유를 사용하지 않는 제품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언젠가 아이들이 우유를 마시지 않고, 유업체가 우유를 만들지 않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경쟁력 없이 가격만 높게 받겠다고 고집하면 몰락할 수 있다. 정부는 낙농 제도 개편을 통해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공급과 수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낙동가와 유업체도 상생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광호 유통경제부장

이광호 유통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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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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