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으면 너희도 같이 죽는데 어떡할래?'... 자금시장 덮친 레고랜드 '금융 마피아의 덫'
증권사 '부동산 PF 직접 투자' 과열‥ 부실 위험 우려 제기
전·현직 강원도지사 책임론 공방 가열‥ 정치권으로 확산
정부, 레고랜드 발 ABCP 투자 피해 확산 차단 총력
[아시아경제 라영철 기자] "문재인 정부 때 일어났던 '부동산값 올리기 현상'의 결과로 윤석열 정부가 독박을 쓰게 됐다"
"금융 마피아들이 문재인 정부 때 부동산값이 오르자 증권사를 필두로 캐피탈 등 금융권들이 부동산 PF 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익명을 요구한 전·현직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이 '레고랜드 사태'에 대해 밝힌 견해다.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이 급속히 경색되자, 정부가 '50조원+α'의 유동성 공급 계획을 발표했으나, 자금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덩달아 치열해진 정치권의 책임 공방은 가계와 기업, 금융시장의 혼란을 더욱 가중하면서 정부의 위기관리 역량도 시험대에 올랐다.
이런 중에 강원도는 27일 강원중도개발공사(GJC) 보증채무 전액인 2050억 원을 오는 12월 15일까지 조기 상환 방침을 밝혔다.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에만 몰두하다가 이번 사태를 맞은 금융권을 향한 시선도 곱지는 않다.
특히 BNK투자증권이 강원도가 GJC에 대해 기업회생 신청을 발표한 뒤, '아이원제일차'의 ABCP를 부도 처리해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BNK투자증권은 GJC가 필요자금 조달을 위해 설립한 SPC '아이원제일차'의 ABCP 발행 주관사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건설사의 지급 보증이 들어가는 단계나 시공 단계의 부동산 PF 대출은 리스크가 작다.
'PF(프로젝트 파이낸싱)'는 건설이나 대형 사업을 진행하면서 미래에 발생할 이익을 담보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 기법이다.
레고랜드에 비유하면 강원도가 출자한 GJC는 향후 레고랜드 운영에서 발생할 이익을 담보로 레고랜드 기반시설 조성에 필요한 자금을 금융권으로부터 빌렸고, 이를 강원도가 채무 보증을 선 것이다.
PF 초기 단계인 땅을 사들이는 과정이나 시행 단계에 들어가려는 과정들에선 관청으로부터 각종 인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그때는 리스크가 매우 크다.
과거에는 리스크가 큰 상황에서 사채업자들이 높은 금리의 돈을 빌려주고 막대한 이익을 챙기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부동산값이 폭등할 때 저축은행들은 초기 땅 매입 단계 대출이나 인허가 과정 단계에서 서민들의 대출 문턱을 큰 폭으로 낮췄다.
이자 더 준다는 저축은행에 한두 푼 벌어서 모은 돈을 예금했다가 결국 몽땅 잃는 피해자가 속출했다. 그래서 2010년에 터진 게 '저축은행 사태'다.
문재인 정부 때는 저축은행이 아닌 증권회사들이 최근 몇 년 동안 주식이 아닌 부동산으로 막대한 액수의 돈을 벌었다. 그래서 '부동산 IB(투자은행) 전성시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고액 연봉 받아보자'며 부동산에 꽂힌 증권맨들이나 증권사들은 앞다퉈 땅 투기에 매몰됐다.
증권사는 주식 매매나 증권 상품을 팔아 수수료를 받고 성과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다. 부동산 투자를 하더라도 직접 투자가 아닌 '리츠'라는 상품을 통해 사업하는 게 상식이다.
'리츠(REITs)'는 부동산 간접 투자 상품의 하나로. 공모를 통해 일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은 뒤, 부동산과 부동산 관련 유가 증권에 투자해 운용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대형증권사 직원들이나 부동산금융본부 직원들은 신규 취급 또는 주식 업무보다는 부동산 투기에 매몰됐다. 대부분 PF 리스트 심사를 관리하며 만기가 도래하는 단기 채권 막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금리가 폭등해 막을 수 없게 되자, 부동산 PF는 엄청난 금액의 시한폭탄으로 되돌아왔다.
한때는 고액의 성과급을 받았다고 돈 잔치를 벌였던 증권사들이 PF 대출 금액 중에 만기 상환이 도래한 단기 채권을 사들여야 했지만, 폭등한 금리로 현금화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
금리는 올해 3월 0.25%, 5월에는 0.5%, 6월에는 0.75%로 지속해서 큰 폭으로 올랐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말에 선임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7월, '환율이 폭등할 것'이란 우려에 "금리를 당분간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후 8월 금통위에서도 "전월과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0.25%포인트 금리 인상 기조 유지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결국 우리나라도 미국의 결정에 굴복하며 05%로 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부동산값 폭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한테 먼저 대출부터 해 주고 회수한 뒤, 이익을 챙기려던 증권사 등 금융기관들이 갑작스러운 미국의 금리 인상에 당한 것이다.
이 때문에 큰 타격을 입은 곳이 채권 시장 중에서도 '단기 채권' 시장이다. 그중 대부분 물려있던 곳이 춘천의 '레고랜드'였다.
레고랜드 ABCP 투자 규모를 보면 신한투자증권 550억 원, IBK투자증권 250억 원, 대신증권 200억 원, 미래에셋증권 200억 원, 삼성증권 200억 원, NH투자증권 150억 원, 한국투자증권 150억 원, DB증권 150억 원, 유안타증권 50억 원, KB증권 50억 원, 멀티에셋자산운용 100억 원 등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 마피아들이 투자자들로부터 용돈 받고 밥 얻어먹으면서 돈 벌 때는 고금리로 챙기면서 부실이 되면 정부한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래도 이미 다 투자해 놨기 때문에 그들은 조용히 즐기며 기다릴 것이고,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정부의 개입으로 국민이 낸 혈세만 줄줄 새어나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다른 금융관계자도 "나 죽으면 너희도 같이 죽는데 어떡할래? 라는 식"이라며, "노무현 정부 때는 저축은행들이 다 망가뜨리더니 이번에는 증권사들이 망가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유 업무에만 열중하면 되는데 부동산 시장에까지 뛰어들어 돈 번다고 설치다가 망하게 생겼으니까 정부한테 오히려 강짜를 부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 가열되는 책임론 공방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는 알펜시아와 레고랜드 사업에 이르기까지 각종 특혜 시비 의혹 중심에 서 있다.
그는 도지사 재임 당시, '레고랜드에 불공정 계약 등 각종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다 '접근성이 떨어지고 부실한 콘텐츠로 사업성이 낮다'는 지적들에도 불구하고 레고랜드를 지원하고 채권에 대해서도 보증을 섰다.
여기에 레고랜드 개장 전후에 잦은 안전사고까지 겹치면서 레고랜드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은 급격히 떨어졌다.
이런데도 최 전 지사는 언론매체를 통해 "그 기업은 중도개발공사인데 재무제표를 보면 흑자 기업인데 그냥 가만히 뒀으면 됐다"고 했다.
그러나 강원도를 중심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최 전 지사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강원도가 레고랜드 사업자인 GJC에 대한 지급 보증액을 기존 210억 원에서 2050억 원으로 10배가량 늘린 점을 들어 최 전 지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레고랜드 사업은 11년 전부터 내부에서도 소수만 아는 '깜깜이' 구조로 진행돼 구성원 대부분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봤다"며 "언젠가 도려내야 할 환부였다"는 도 자성의 목소리도 이미 나왔다.
이 때문에 최 전 지사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지속해서 제기돼 왔다.
강원도정을 이어받은 김진태 현 강원도지사는 도민 부담 최소화를 위해 GJC에 대한 ‘회생 신청’을 선택했다.
김 지사는 지난달 28일 "2050억 원의 보증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도개발공사 회생을 신청하기로 했다"며 "법정 관리인이 제값을 받고 공사의 자산을 잘 매각하면 대출금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지사가 "도의 보증채무 이행 의무는 회생 신청과는 별개"라고 강조했지만, 현 지사로서의 책임론도 거세다. 자본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한 레고랜드 사태의 직접적 책임은 김진태 지사에게 있다는 것이다.
‘회생 신청’ 결정에 앞서 국내외 경제 사정 등을 고려해 중앙정부와 충분한 논의를 해야 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철성 강원평화경제연구소장은 언론을 통해 "최문순 도정의 방만 운영은 혀를 내두르게 하고, 김진태 지사는 난데없는 기업회생 신청으로 사달을 냈다"며 "종합 감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에 긴급 진화에 나섰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23일 비상 거시경제금융 회의를 열어 "부동산 프로젝트펀드(PF) 시장 불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며, "모든 지자체가 매입 보증을 확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권들은 "지방자치단체가 보증 선 채권에 대해 디폴트를 선언해 채권시장이 얼어붙었다"며 발끈했고, 언론들도 일제히 '김진태 발 채권은행 태풍'이라고 연일 보도했다.
정치권은 이번 사태 해결에 집중하기보다는 정치적 이해 속셈으로 이용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은 김진태 강원지사에 대해 책임론을 제기하며, 여론 비판에 합세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삼성 주춤하자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1년 만에 흑...
더불어민주당은 김 지사를 향해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다면 자신의 무지와 무책임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