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설 여지 남겨둔 ‘임시 방폐장’…사실상 ‘무기한 사용’ 암시
한수원, 3개 원전본부에 건식저장시설 건설 추진
계속운전 등에 따라 비용 재산출 가능하다고 명시
'임시' 시설이 영구 방폐장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
한국수력원자력이 오는 28일 이사회에 상정할 ‘고리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건설 기본계획(안)’의 핵심은 건식저장시설 신·증설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점이다. 기본계획안은 ‘계속운전, 신규 원전 건설, 중간저장시설 운영 지연 시 (비용) 재산출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원전 계속운전 등을 통해 사용후핵연료 배출량이 늘어나거나 중간저장시설 구축이 늦어질 경우 새로 지은 건식저장시설을 언제든 확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건식저장시설이 사실상 영구처분시설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로드맵에 따르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저장하는 영구처분시설 확보 시점은 2060년이다. 한수원이 고리 원전 건식저장시설을 2027년 착공해 2030년부터 가동할 계획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고준위 방폐물은 최소 30년 동안 건식저장시설에 보관해야 한다. 2031년 가동 예정인 한빛·한울 원전 건식저장시설도 상황은 비슷하다.
‘임시시설’ 불과…방폐장 확보는 지지부진
문제는 건식저장시설이 원전 가동 후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보관하는 시설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건식저장시설인 맥스터와 캐니스터는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수 있는 용량이 한정된 데다 지상에 노출된 채로 구축돼 저장 방식도 완전하지 않다. 지상 위에 지어진 만큼 지진, 해일 등 자연재해나 군사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서다. 이에 사용후핵연료를 완전히 처분하려면 건식저장시설에서 중간저장시설로 옮긴 후 최종적으로 영구처분시설(방폐장)에 저장해야 한다.
최선의 해결책은 방폐장 구축이지만 부지 선정 단계부터 과정이 만만치 않다. 당초 정부는 1980년대부터 방폐장 부지를 찾았지만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반대에 부딪혀 최근까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국내 원자력 산업은 ‘1호 원전’인 고리1호기가 1978년 가동한 후 45년 가까이 간이 화장실 격인 임시저장시설에 의존해왔다.
정부가 추산한 방폐장 구축 기간이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방폐장 확보 절차에 돌입해 영구처분시설을 완공하기까지 최소 37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영구처분시설은 부지 선정(13년), 지하연구시설 건설·실증 연구(14년)를 거쳐 27년 후에나 착공할 수 있다. 다만 방폐장은 지역사회 반발이 거센 사안인데다 정치적 이슈로 불거질 수도 있어 정부가 13년 이내에 부지 선정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031년부터 임계점…고육책 꺼낸 한수원
한수원은 결국 건식저장시설의 신·증설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으로 고육지책을 마련했다. 건식저장시설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당장 2031년부터 원전 가동을 순차적으로 중단해야 한다는 긴박함이 작용한 결과다. 실제 사용후핵연료를 발전소 내부 수조에 습식저장 방식으로 보관 중인 고리 원전과 한빛 원전 포화율은 지난달 말 기준 각각 85.9%, 75.7%로 모두 2031년이면 한계치에 달한다. 바로 이듬해면 한울 원전 포화율(82.%)도 100%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방폐장 확보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수원이 고육지책을 꺼낸 배경도 정권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방폐장 건립을 ‘폭탄 돌리기’식으로 회피한 데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원전 가동률을 높이고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한 만큼 사용후핵연료 배출량은 꾸준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2031년으로 예정된 고리·한빛 원전 포화 시점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한수원이 건식저장시설 구축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이 시급한 사안인 건 맞지만 지역주민 등의 공감대 없이 건식저장시설 구축을 강행하면 뒤탈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행법상 건식저장시설은 공론화 없이 건설할 수도 있지만 지역주민 반발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이에 월성원전은 지난해 맥스터 증설 과정에서 지역주민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등 공론화 작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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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부담은 또 다른 문제다. 한수원은 사용후핵연료를 배출할 때마다 일정 비용의 관리부담금을 내 ‘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을 조성한다. 한수원에 최근 10년간 부과된 사용후핵연료 관리부담금은 6조1300억원 규모로 향후 방폐장 건설 등에 활용된다. 기금 목표는 방폐물 관리에 있지만 수조원에 달하는 건식저장시설 건설비와 지역보상금은 모두 한수원 자체 예산으로 조달해야 한다. 법무부 산하 정부법무공단도 최근 한수원 측 법률 자문을 받고 건식저장시설 건설비가 ‘이중 부담’에 해당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종=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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