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 과학 기술이 만든 '위험사회'
지난 주말, 데이터 센터 화재로 인해서 카카오 서비스 전체가 중단되면서 상상 속의 디지털 재앙이 현실화했다. 4750만 명이 이용하는 카카오톡은 우리 사회 전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중핵이다. 이 서비스가 정상 작동을 멈추자 사람들은 일상이 무너지고 삶의 흐름이 끊기는 듯한 공포에 빠졌다.
이 사태로 우리 삶이 일개 기업에 얼마나 깊게 종속되었는지가 드러났다. 지난 8월 말 기준, 카카오 계열사 숫자는 무려 133개에 이른다. 금융, 교통, 쇼핑, 엔터테인먼트 등 카카오톡의 지배력을 이용해서 삶 전체에 발을 뻗었다. 개인 인증에서 백신 예약, 고지서 배달까지 카카오에 떠맡긴 정부 기관을 포함해서 카카오와 연동해 일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카카오톡이 마비되자 일상이 한순간 멈추는 지옥문이 열렸다.
'위험 사회'(새물결 펴냄)에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 과학기술 사회의 두 얼굴에 주목한다. 근대 이후, 한 개인 또는 기업의 우발적 실수나 사소한 잘못이 전체 사회를 재난에 빠뜨리는 일이 생겨났다. 과학기술은 삶에 편리와 풍요를 낳는 원천이면서 일상적 불확실성과 위기를 생성하는 불안의 발생기가 되었다. 화약과 다이너마이트가 일으킨 대량 살상, 화석 연료가 빚어낸 기후 재앙, 화학물질로 인한 생태 파괴, 원자력 사용에 따른 핵발전 사고와 핵전쟁 위협, 사이버 테러 등이 빚어낸 디지털 네트워크 붕괴, 투기와 과소비를 부추기는 경제가 낳은 반복적 거품 붕괴와 공황은 과학기술이 가져온 위기의 대표적 사례이다.
인류 번영을 위해 개발한 과학기술 탓에 오히려 위기의 강도가 높아지고 안전과 생존을 위협받는 사회를 벡은 ‘위험 사회’라고 했다. 한 사회의 중심에 부나 종교가 아니라 위험이 자리 잡은 사회이다. 과도하게 밀도 높게 연결된 네트워크 사회는 더욱더 위험하다. 한 기업의 위기를 사회 전체의 위기로 만들고, 작은 재난을 더 빨리, 더 멀리 퍼뜨리기 때문이다. 카카오 사태는 우리에게 이를 선연히 증명했다.
벡에 따르면, 시장에 대한 과도한 믿음, 이윤에 대한 광적인 집착, 위험에 대한 관료주의적 불감증은 위험을 심화한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발전과 성장과 성공의 이름으로 위험이 확대 재생산되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 전체가 위험을 관리하고 조절하고 통제할 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생산은 더 큰 위험의 체계적 생산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풍요를 누릴수록 불안과 위험도 증가하는 모순과 부조리가 사회의 기본 작동 원리가 되는 것이다.
사회적 책무를 뒷전으로 젖혀놓으면서 이익은 사유화하고 위험은 사회화하려고 애쓰는 악당 기업은 사회 전체의 위험을 유발하고 또 악화시킨다. 경영진의 윤리적 타락으로 악명을 떨쳤던 카카오가 디지털 재난을 일으킨 것을 우연으로만 보기 어렵다.
그동안 카카오는 나쁜 기업의 대장처럼 굴어왔다. 기업 분할로 대주주 배는 불리고 소액주주 살림은 거덜 내는 일을 몇 차례 거듭했고,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골목 상권을 침해함으로써 자주 물의를 일으켰으며,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웹소설과 웹툰 작가를 질병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살인적 시스템을 아직 유지 중이다. 공동체 전체는 크게 생각지 않고 이익 추구에만 혈안이 된 기업이 우리 삶 전체를 좌지우지하게 방치한 셈이다.
재앙은 늘 예측을 뛰어넘는다. 오만에 빠진 인간은 파멸의 나락에 떨어지게 마련이다. 국민 전체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플랫폼 기업의 경우, 언제나 충분한 대비가 모자란 것보다 낫다. 그런데, 놀랍게도, 카카오는 ‘분산 처리’라는 인터넷 서비스의 기본 규칙도 지키지 않았다. “위기 대응 시나리오가 있었으나 화재는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라든지, “데이터 센터 전체가 영향받는 일은 이례적 상황”이라든지 하는 변명은 카카오의 오만을 잘 보여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도 우리는 비슷한 헛소리를 들었다.
플랫폼 기업에서 데이터 센터 화재는 이례적이기는커녕 모두 예측할 수 있는 기본의 기본에 해당한다. 불난 데이터 센터에 같이 입주했던 네이버, SK브로드밴드 등이 몇 시간 만에 서비스 장애를 극복한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카카오의 화재 대비는 충분치 않았다.
카카오는 돈 되는 사업을 좇아 밖으로만 나돌았을 뿐, 돈 들여 이룩해야 할 기본에는 별로 공들이지 않았던 듯하다. 눈앞의 돈에 눈멀면 자기 능력은 과신하고, 어쩌다 찾아올 위험은 하찮아 보이는 법이다. 오만의 결과는 역대급 사고이고, 사회 전체의 재앙이다. 벡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겪는 위험은 대부분 지진이나 홍수 같은 천재지변이 가져온 위험(danger)이 아니라 인간의 실수와 잘못이 생산하는 위험(risk)이다. 카카오 사태는 당연히 후자에 해당한다.
위험 사회는 안전을 물이나 전기처럼 공공 소비재로 만든다. 카카오 사태가 보여주듯, 재난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데다, 모두가 그 희생자로 전락하는 세상에서는 부(富)보다 안전이 사회의 기본 토대를 이룬다는 뜻이다. 벡은 이윤에만 몰입하는 자본주의의 광기 어린 폭주와 기능적 합리성에만 신경 쓰는 과학기술의 무분별한 확산을 방지하려면 무엇보다 ‘성찰적 근대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회 전체에 편재하는 위험의 관리를 소수 관료나 전문가 손에 맡기지 말고, 시민 전체가 연대해서 직접 위험 관련 지식을 생산하고 공유하며 반성하고 비판하는 사회를 이루자는 것이다.
김홍중 서울대 교수에 따르면, 위험 사회에서 우리의 사회적 삶은 ‘이웃에게 무해하라’라는 명령에 따라 재구성된다. 안전보다 성장을 우선하는 정치가 위험을 방치하고, 약자의 죽음보다 강자의 ‘사회적 기여’를 아끼는 법원이 위험에 면죄부를 뿌리는 위험 국가이기에 “피해에 대한 공감, 가해에 대한 분노, 무해에 대한 의지가 삶을 지배”한다.
안전에 대한 열망은 항상 위험에 협박당하는 평범한 시민들을 위험의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우리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과 싸우도록 이끈다. 안전에 대한 갈망이 빚어낸 ‘무해의 연대’는 새로운 사회 계약의 출발점이다. 묻고 싶다. 위험 기업 카카오는 아무 규제 없이 우리 일상 전체를 맡겨도 될 만큼 무해한 존재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시민사회의 성찰적 통제 아래 두어야 할 유해한 존재인가.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삼전·닉스, 공부 못한 애가 갔는데"…현대차 직...
장은수 문학평론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